99년 한해를 '한국영화 폭발'이라는 말로 정리하면서, 영화산업이 쏘아올린 요란한 축포 뒤에 묻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등 유난히 많은 위기설이 회자됐는데, 영화가, 그리고 약간은 <씨네21>도 그 책임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돈되는’ 학과나 ‘재미있는’ 학과로 몰리면서 그런 현실에 맞게 학제를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형편에서 염무웅 선생이 어느 일간지에 쓴 글 한 대목은 가슴을 찌르는 바 있었다. “동네마다 노래방과 비디오가게가 들어찬 오늘날 대학마저 수요자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학의 자기부정이다. 대학은 좀더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봉사하는 것이고 인문학이 바로 그런 노력이다.” 70∼80년대에 김용옥 선생이 노자를 공부한다 할 때 ‘파시즘을 돕는 현실도피의 학문’이라고 질시 당했다지만, 요즘 같은 물신주의와 실용주의의 시대에는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진보의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것, 현상을 넘어서려는 것, 바로 그것이 진보의 첫걸음일 것이므로.
영화가 한때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국영화가 오직 <파업전야>의 길로 갔다면 한국영화와 영화산업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점유율 40%에 육박하는 한국영화의 힘을 길러낸 것은 영화를 엔터테인먼트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공이다. 하지만 이처럼 아찔한 상업영화의 발흥을 맞이하면서, 이쯤 되면 한국영화를 다시 생각해볼 여유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쉬리>가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신경숙 소설의 판매부수보다 스무배 가까이 관객을 불러모았는데, 시와 소설을 변경으로 물리치면서 문화산업의 중원을 점령한 영화가 과연 한 시대 정신문화의 중심을 지킬 만큼 양식을 갖췄는가. 영화적 성취와 문학적 성취는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감안하고라도, 과연 90년대 영화작가 가운데 80년대의 이청준이나 황석영 조정래 박경리가 있는가. 90년대 영화평단에는 80년대 백낙청 김현 김우창 유종호 김윤식같이 당대 지성을 대표하는 거인들이 있는가. 아니, 엔터테이너 이전에 지식인의 태도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몇이나 되나. 결코 <박하사탕> 선전하려는 글은 아니지만 그 얘기로 매듭짓고자 하는 건, <박하사탕>은 드물게 지식인으로서 영화감독의 태도를 존경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석규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박하사탕>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건 문화산업의 중원을 점령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아주 불행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