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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순지 감독에게서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첫 번째 편지엔 ‘망자(亡者)에 대한 그리움’이 적혀 있었다. 이번엔 ‘애틋한 첫사랑’이다.
이와이 순지 감독 영화는 한편의 연애만화와 다를 바 없다. 남녀의 통속적인 로맨스를 즐겨 다룬다. 그런데 방식이 남다르다. 죽은 이에 대한 사랑이야기(<러브 레터>)거나 결박 강박증을 앓는 어느 남녀(<언두>)일 때도 있다. <4월 이야기>는 첫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여성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이 흔해 빠진 연애담을 이와이 순지 감독은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일상의 자그마한 비밀,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사랑의 기적을 마법처럼 빚어내는 것이다.
<4월 이야기>의 히로인은 마쓰 다카코. <러브 제너레이션>이라는 트렌디 드라마로 일본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4월 이야기>에서 마쓰 다카코는 풋풋한 미소로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특별한 절정부 없이 부드럽
이와이 순지의 매력과 한계, <4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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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공평한 것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데 꼭 소득분배구조 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늘 말씀하는 대로 세상에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 “왜 하필 나야?” 비명을 지르면서도 노상 치다꺼리를 도맡는 멤버가 가정에나 직장에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머지가 고마움을 아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내 손 안가면 되는 일이 없어”하는 투덜거림에 숨겨진 은밀한 기쁨을 알아챈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편할 대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형제 많은 집에서 흔히 보듯, <지금은 통화중>에서 이 보람없는 봉사는 둘째 이브의 몫이다. <리어왕>으로 치면 코델리아 역인 이브는 아버지의 끝없는 투정에 파김치가 돼가면서도 아버지가 말을 걸면 언제나 대답해야 한다고 믿는다. 심지어 벨만 울리면 아예 “네, 아빠”하며 수화기를 든다. 노환으로 기억에 구멍이 숭숭 난 아버지도 이브의 전화번호만은 잊지 않는다. 멕 라이언의 이브는
멕 라이언의 영화, <지금은 통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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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브릿지>는 불행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남녀가 서로의 짝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난 아예 불행 자체니까요”라고 말하는 창녀 아델은 난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자신은 ‘역’과 같은 존재다.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왔지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신념으로 행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가보가 찾아온다.
사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새로운 행복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창녀 아델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공연을 가는 곳마다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녀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나눈 뒤 물건을 사러간 여자는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이제 둘 사이에는 행복의 절정보다는 ‘하강’만이 남았기 때문이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 <걸 온 더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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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중세와 현대를 통틀어 가장 영토가 큰 제국”(브리태니커 사전 참조)을 건설한 몽고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 율리우스 시저, 나폴레옹 등과 마찬가지로, 정복왕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의 삶은 서사물에 매력적인 소재다. <징기스칸>은 몽고의 통일과 대제국 건설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학살, 권력과 암투로 둘러싸인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영화. 홍콩의 시져널필름코퍼레이션에서 돈을 대고, 내몽고필름스튜디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베이징영화학교 출신인 부부 감독 사이푸와 말리시는 물론, 대부분의 배우와 스탭까지 실제 몽고인들이 그린 징기스칸의 초상이다.
그간 정복자로서의 징기스칸에 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많았던 것과 달리, 몽고인들이 만든 <징기스칸>의 관심사는 인간 징기스칸이다. “1167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 몽골 초원에 태어났다”는 자막으로 시작된 영화는, 소년 테무진이 황제의 칭호를 얻게 되기까지의 치열한 생존투쟁을 다루면서 그의 내면
징기스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징기스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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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는 칼바람 소리가 났다. 어떤 일본 감독도 기성사회와 그렇게 맹렬하게 싸운 적이 없었다. 재일동포 차별, 사형제도, 전후 일본민주주의 실패, 일본 공산당의 스탈리니즘적 몽매함을 가차없이 내리쳤고, 나중엔 국가의 존재가치까지 부인했다. 일본인 심성의 밑바닥을 헤집으면서 느리고 긴 싸움을 벌였던 이마무라 쇼헤이가 “내가 농부라면 오시마는 사무라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던 그가 70년대가 되자 변했다. 아무리 “체제가 바뀌어도 밑바닥 인생들은 그대로다.” “일본을 떠나 국제적 감독이 되고 싶다.” 등의 체념적 발언을 하더니, 갈기를 휘날리며 도쿄 거리를 누비던 거친 모습은 사라지고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TV 여성상담프로에 나왔다. 프랑스의 아르고스필름이 제작비를 댄 <감각의 제국>은 그 와중에 태어난 영화다.
<감각의 제국>의 원제는 ‘사랑의 투우’다. 투우는 투우사와 소 가운데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다. <감각의 제국>
뻔뻔스럽고 도발적인 포르노그라피, <감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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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이란 직업을 ‘천명’으로 여기고 자기의 전부를 걸었으나, 남은 거라곤 쓰라린 회한뿐임을 깨달은 노인의 허망한 미소. <철도원>의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과 주인공 다카구라 겐은 이미 20년 전 <엑기>(驛)에서 그 쓸쓸한 삶의 미소를 예감했다. <엑기>의 미카미는 이미 그때 삶의 허방을 보았다. 그는 철로를 미끌어지는 기차가 그렇듯, 인생의 키를 쉽게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마치 작정을 한 듯 모든 건 그의 기대에 어긋나 있다. 특수사격대로 발령받은 그는 순순히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만 그 결과로 ‘백정경찰’이란 비난을 듣는다. 그로 인해 미카미는 회의에 빠지지만, 그의 총에 죽는 범인의 숫자는 늘어만간다. 또한 그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생각한 기리코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기리코와의 결합을 위해 경찰직 사퇴를 결심한 직후에 그는 기리코의 집에 숨어 있던 그녀의 첫사랑을 사살한다. 언제나 그랬듯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쓸쓸한 삶의 미소, <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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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 올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종교적인 기적이나 빤히 보고서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다. 오래가진 못했지만 1999년 미국에서 개봉한 첫주에 <식스 센스>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스티그마타>는 초자연적인 힘에 영혼과 육체를 저당잡힌 프랭크를 내세운다. 그녀의 몸엔 예수의 성스러운 상처가 새겨지고 조사나온 앤드루 신부는 결국 그녀를 조종한 힘이 이단으로 몰려 바티칸으로부터 파문당한 한 신부의 영혼이었음을 밝혀낸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했던 루퍼트 웨인라잇은 쉴새없이 관객의 눈과 귀를 공격한다. 강렬한 록 사운드에다 갑자기 몽환적인 읊조림을 이어 붙이거나 한 프레임 내에 여러 이미지를 중첩한 <스티그마타>를 두고 <LA타임스>는 ‘90년대 MTV 버전의 엑소시스트’라 평했다.
하지만 강력했던 초반의 MTV식 몽타주는 점점 단순한
90년대 MTV 버전의 엑소시스트, <스티그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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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인간사 희로애락으로 안무한 영화다. 사랑과 정열, 환희와 고뇌, 질투와 분노가 출렁대는 탱고의 강렬한 선율과 춤사위는 댄서들의 심리와 개인사를 거울처럼 비춰내고, 초기 유럽 이민자들의 정착과 군부독재 시절 등 아르헨티나의 고단한 역사까지 아우른다. 역사와 사회, 전통예술에 대한 속깊은 애정으로 들쭉날쭉한 필모그래피를 그려온 카를로스 사우라도, 이제 그 모든 관심사를 한번에 녹여내는 노하우를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탱고>는 <피의 결혼식> <카르멘> <플라멩코>로 이어진 그의 춤 영화 행진에, 이렇게 의미심장한 마침표를 찍는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중견 연출가가 젊고 아름다운 무희를 뮤즈로 맞고, 그 사랑으로 천국과 지옥을 현기증 나도록 오가면서 필생의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스토리나, 극중극을 내러티브로 활용한 구성은 특히 <카르멘>과 닮은 꼴이다.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이 정착을 거부하자 배신감에 살인을 저
인간사 희로애락으로 안무한 영화,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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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에 관한 영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왜 죽였는가, 원인은 무엇인가? 세인들은 흔히 정서적, 환경적 요인으로 모든 범죄행각을 설명하기도 한다. 혹자는 뇌과학의 입장에서 ‘양심의 박동음’을 들을 수 없는 이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것이 막연한 분노 탓인지 아니면 신체상의 결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프리츠 랑 감독의 <M> 이후 연쇄살인마에 관한 스릴러물은 긴 계보를 형성한다. 스파이크 리는 <똑바로 살아라>와 <말콤X> 등의 수작들로 사회적 발언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흑인 감독. 그가 처음으로 만든 범죄 스릴러물 <썸머 오브 샘>(이 영화는 <선 어브 샘>(Son Of Sam)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은 디스크와 펑크, 성해방의 물결이 드셌던 197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관객을 향수어린 시공간으로 몰아넣는다.
<썸머 오브 샘>은 실화가 바탕이다. 44구경의 매그넘
미국인들의 정신적 진공상태에 방점을 찍다, <썸머 오브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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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속에 담겨진 은밀한 연애이야기’라는 홍보카피를 달고 있지만 <인터뷰>는 숱한 사랑이야기를 빌려 카메라의 진실, 나아가 진실 그 자체를 궁리하는 영화다. 마치 좋은 연애소설이 끝내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성찰에 가 닿듯, <인터뷰>의 로맨스는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그건 어쩌면 진실과 거짓를 구분하는 ‘경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혹은 경계짓기의 무의미함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인터뷰>의 화두는 대중영화의 코드에 쉽게 접속될 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낯설고 생경한 영화 컨셉을 주류의 울타리 내에서 풀어내고 있다.
<인터뷰>에는 대부분의 장면이 두번 반복된다. 우선 전반 15분 동안 대략의 줄거리를 잡아줄 장면들이 영화감독인 은석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리고는 ‘인터뷰 1년 전 프랑스 파리’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의 서두보다 더 이전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가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
카메라 속에 담겨진 은밀한 연애이야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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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의 귀신계는 확실히 동세서점(東勢西漸)의 형국이다. 흡혈귀나 미라의 후예들이 놀던 자리에 이제 장화홍련형 유령들도 출몰하고 있으니. 생전의 한을 풀어줄 귀인을 학수고대하며 슬픈 넋으로 인간 세상을 부유하는 이 착한 동양계 귀신들은 이미 <사랑과 영혼>(1990) 때 유사종을 선보인 바 있으며, 지난해 <식스 센스>에 전격 출연해 서양인들의 얼을 빼놓았다. <스터 오브 에코>도 <식스 센스>의 흥행 퍼레이드에 가리지만 않았어도 꽤 각광받는 동양계 공포 영화가 될 뻔했다. 비슷한데 조금 모자라는 쪽이 늘 열등한 아류로 치부되는 과도한 수모를 당하는 법.
어느 쪽이 벤치마킹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스터 오브 에코>는 <식스 센스>와 사촌지간 정도로 보일 만큼 닮았다. 두 영화에선 모두, 어른보다 더 깊은 눈빛의 아이는 영혼들과 교류하고, 남자는, 아이보다는 한수 아래지만, 어느 날 영적 능력을 깨달은 뒤 낯선 세계
<식스 센스>와 사촌지간, <스터 오브 에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