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자배우
“문소리가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는 말을 굳이 또 해야 할까, 떡볶이는 맛있다 같은 것인데.”(임수연) 그렇긴 하지만 또 하긴 해야겠다. 언젠가부터 존재 자체로 스크린에 핍진성을 더하는 독보적인 미장센이 된 배우, 문소리에게 연기에 대한 찬사는 그리 새롭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구한 세 자매 중 그나마 번듯이 사는 둘째로 분해 김선영과 장윤주 사이에서 앙상블의 기둥을 받치고, 카메라 밖에서는 현장의 큰언니를 자처한 문소리가 남긴 <세자매>의 성취는 올해 다시금 호명되어야 마땅하다. 가히 “냉철히 끓어오르다 열렬히 삭혀버리는 연기의 마스터”(남선우)라 할 만하다. 게다가 문소리는 <세자매>로 올해의 제작자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하면서 “문소리가 감응하는 시나리오, 지금의 그가 존재하기를 선택한 자리들”(임수연)에 한국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증명했다. <리틀 포레스트> <배심원들> <메기> 그리고 올해 <세자매>와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 등으로 완성된 행보는 좋은 안목 이상의 뚝심과 결의, 한국영화의 공백을 꿰뚫는 영민함으로 빛난다. 바야흐로 “대중성과 마니악함을 태연히 겸비한 문소리만의 균형”(김소미)이 실로 우아하게 비상하고 있는 나날들이다. 문소리는 “잘될 것 같아서 했다기보다는 ‘잘 안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어도 그냥 계속해나간 결과”라고 지금의 찬사에 덤덤한 기분 좋음으로 응답했다. 그 은근한 끈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몸, 마음, 능력을 보태 어렵더라도 계속해보겠다.”(문소리) 신작 <서울대작전>을 촬영 중인 그는 내년 1월 드라마 <퀸메이커>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김소미
올해의 남자배우
“<자산어보>를 통해 본 설경구의 맨얼굴은 그가 좋은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킨다.”(장영엽) 데뷔 후 첫 사극 도전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는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어류 공부에 눈빛이 반짝이다가도 유배당한 선비로서의 참담한 심정을 유려하게 오가는”(배동미) 그의 나침반은 과시가 아닌 절제를 따라 나아간다. “흑백 화면에서 더 진하고 깊어진 얼굴이 고집스럽고 완고한 정약전의 태도에 이상주의적 내막을 덧씌우는 연기”(남선우)와 만나 영화에 기품마저 더했다. 김소희 평론가는 “깊이로 신체적,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혼연일체를 “올해의 뜀박질”이라 이름 붙였다.
“배우 인생 중 처음으로 내 작품을 스스로 ‘정말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 마음을 알아봐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라 소감을 전한 설경구는 <자산어보>가 안겨주었던 확신과 자부심을 다시금 곱씹었다. 역사적인 인물의 깊이와 너비를 세공해내는 집요한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섬에 갇혀 생활하면서 “실제로 19세기를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저예산의 로케이션 촬영 동안 몸은 고단했지만 “동료들끼리 서로를 더 배려하고 협력하는 미덕을 발견하는” 각별한 순간도 마주했다. 그 기억을 회상하는 배우의 목소리엔 감흥이 서려 있었다. 정약전을 연기한 <자산어보>로 새로운 인장을 새기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 삼은 <킹메이커>의 왕으로 한해를 마무리한 올해의 설경구. 그에게서 여전히 “뭔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임수연)가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소미
올해의 감독
“극한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감독의 태도가 그대로 영화에 반영되어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났다.”(허남웅) 코로나19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극장가에 안착한 <모가디슈>는 아이러니하게도 100% 해외 로케이션에 도전해 한국영화의 스케일을 넓힌 작품으로 남았다. “아프리카 올 로케이션 촬영으로 준수한 완성도를 달성한”(배동미) 류승완 감독에게 표를 던진 평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확장과 투지의 궤적에 박수를 보냈다. 1990년, 극심한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북한 대사관 일행의 탈출기를 그린 <모가디슈>는 “액션으로 감정을 설득해내는 불가능한 지점을 향한 끝없는 탐색”(김소희)의 결과물이다. 류승완을 “액션계의 켄 로치”라 빗댄 김성찬 평론가는 “자기가 잘하는 일의 최대치를 매번 경신하고 있다”는 찬사를 덧붙였다. 실화의 뜨거움과 치열한 액션,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을 조율하는 류승완의 솜씨에선 전작들에 비해 오히려 한결 “담백한 연출로 관객을 설득시키는”(박정원) 노련함이 묻어난다. 코로나19 악화로 방역 4단계에 접어든 올여름에 개봉을 감행한 용기 있는 결정 또한 극장가의 숨통을 틔웠다. 올해 류승완의 선택은 여러모로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이 어디인지”(김현수)를 보여준 셈이다.
올해의 감독 선정 소식을 전해들은 류승완 감독은 “어려운 제작 환경과 개봉 상황을 뚫고 큰 영화를 운영한 것에 대한 응원과 지지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영광스럽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에게 11번째 영화 <모가디슈>는 “영화란 무엇이며 영화적인 것은 또 무엇인가”를 되묻게 했다. “팬데믹 상황과 OTT의 부상이 맞물린 이 시기에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질문이 오히려 새로운 동력이 됐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신작 <밀수>(출연 김혜수, 염정아)는 류승완 감독이 자신만의 대답을 찾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그는 최근 1차 편집을 마치고, 배우들의 캐릭터 몰입도와 연기를 위해 통상 마지막 단계에 이뤄지는 후시녹음(ADR)부터 먼저 진행했다. “어쩌면 영화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일 이때에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 중이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어설프지만 끝까지 계속 나아가보려 한다.” 김소미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
<낫아웃>의 배우 정재광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한국경쟁 배우상), 청룡영화상(신인남우상)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봉황대기 결승타의 주인공으로 출발해 신인 드래프트, 대학 입시에 부딪히며 서서히 하강하는 고교 야구선수 광호를 리얼하게 연기하며 고유한 기운을 뿜어낸 그는 이 작품에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안정적인 얼굴”(박정원)을 선보였다. 혼란에 생생히 반응하는 캐릭터는 배우가 전신 태닝, 삭발, 증량까지 감수하며 완성된 결과물. 배우 정재광은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낫아웃>의 개봉과 수상을 경험하며 순수한 열정으로 임한 도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고 초심으로 정진하는 영화인이 되겠다.” 남선우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어른들은 몰라요>의 가출 청소년 세진, <인질>의 납치 피해자 소연,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결정적 순간을 빚어내는 참가자 지영까지. 2021년 배우 이유미는 스크린과 OTT를 오가며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평범치 않은 상황들을 설득해나가는 저력”(장영엽)을 과시했다. 이와 같은 평가는 그가 장편 상업영화와 드라마 조·단역은 물론 독립 단편영화, 웹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성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끝에 얻은 신뢰라 더욱 값지다. 배우 이유미는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로 선정되었다는 소식과 이유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따뜻해진 마음을 간직하고 책임질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겠으니 앞으로도 많이 궁금해해달라.” 남선우
올해의 신인감독
“좁고 삭막한 인간관계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 작은 구멍을 내는 방식을 과하지 않게 설득한다.”(김소희) “적당히 매혹적이고 적당히 발랄하며, 보는 내내 예상을 엇나가기에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독립영화다.”(이지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과 한국경쟁 배우상(공승연)을 시작으로 국내외 시상식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혼자 사는 사람>의 홍성은 감독이 올해의 신인감독에 호명됐다. 1인 가구의 삶을 통해 고립을 자처하는 이들의 입장을, 더 나아가 그들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조용한 움직임을 신중하게 관찰하는 작품이다. 홍성은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큰 운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인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첫 영화를 만든 덕분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냥 계속 영화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소감을 <씨네21>과의 전화 통화에서 전했다. 임수연
올해의 시나리오
김세겸 <자산어보>
김세겸 작가는 <자산어보>로 <변산>에 이어 또 한번 이준익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이준익 감독님이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자산어보> 소재를 영화화할 때 날 만나게 됐을 뿐, 내가 ‘올해의 시나리오’에 선정된 소감을 전하는 것은 과분한 일”이라며 운을 띄웠다. 흑백 화면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흑산도의 질감과 명암은 섬세한 시나리오에서부터 출발했다. 김세겸 작가는 “흑산도까지 가서 태극기 집회에서 척출된 말단 ‘똘마니’를 만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창대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내가 영화에 기여한 부분이 아닐까”라며 시나리오 창작에 얽힌 비하인드를 들려주었다. 그는 “올해의 배우로 많은 상을 받고 있는 설경구 배우뿐만 아니라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 배우도 주목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임수연
올해의 촬영감독
“<모가디슈>와 <인질>에서 그가 보여준 색감은 작품이 목표로 한 시공간의 질감을 명확하게 연출했다.”(김성찬) 올여름 극장에서 나란히 관객을 맞이한 <모가디슈>와 <인질>에 참여한 최영환 촬영감독이 올해의 촬영감독에 선정됐다. 그는 “모로코 현지에서 대규모의 외국인 엑스트라를 다루는,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고난도의 프로덕션(<모가디슈>)부터 신인감독과 신인배우들과 함께하는 중급 영화의 품격을 높여주는 관록(<인질>)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임수연)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특히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5관왕에 오른 <모가디슈>의 경우 “반군과 정부군이 돌격하는 시가전과 차 유리를 오가며 롱테이크로 이어붙인 카 체이싱 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그동안 충무로에서 시도한 적 없는 촬영을 완벽하게 해냈다”(배동미). 조현나
올해의 제작자
“코로나19로 질식하는 극장가의 숨통을 틔운 올해의 여성 제작자.”(김소미) 좀체 사그라들지 않은 팬데믹의 여파에도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는 <모가디슈>와 <인질>을 연달아 개봉하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이에 “<모가디슈>를 만들어내고 개봉까지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최고의 용기”(김현수)이며 “제작사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제작이 어려워 보이는 작품들을 대담하게 기획하는 안목과 추진력이 돋보였다”(김성찬)는 지지가 이어졌다. 강혜정 대표는 “26년간 영화를 제작해오며 올해가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진 해”였다고 전한다. “<모가디슈>의 남북 대사관과 <인질>의 황정민이 그랬듯 생존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한 시기였다. 영화인 동료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힘입어 꺾이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강혜정 대표가 준비 중인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등 좋은 배우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줬고 내게도 많은 배움을 안긴 현장이다. 내년에 꼭 관객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조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