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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18금(禁)을 허(許)하라
2002-05-23

비디오카페

종로의 중고비디오 판매점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아저씨와 고등학생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둘이 갈등을 빚은 문제의 작품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정말 꼭 보고 싶은데 자기 동네의 대여점엔 없는 비디오라면서 통사정을 했으나 결국 “그러니까 크면 보라고” 하는 아저씨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가만히 서 있다가 그대로 나가버렸다.

역시 빈손으로 가게를 나선 나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걷다가 별 생각 없이 근처의 허름한 비디오방에 들어갔다. 진열대 앞에 서 있던 남정네가 놀랍게도 좀전에 가게에서 본 학생임을 알아채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교복 상의를, 보아하니 배낭에 가득 구겨넣은 채, 추리닝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색 추리닝 윗도리에 회색 교복바지를 입고 맨발에 운동화를 구겨신은 기묘한 그의 모습은 어찌보면 백수 총각 같은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에 구석에 꽂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그보다 먼저 발견한 나는 내심 기대를 하며 경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것을 발견해낸 그는 이번에는 아주 쉽게 성공을 해냈다.

한때 <레옹> 대신 <못말리는 로빈훗>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지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전망좋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푸치니의 오페라 선율을 간간이 뚫고 들려오는 옆방의 긴장감 있는 탱고 리듬에 왠지 모르게 아주 흐뭇해졌다. 둘의 멜로디는 신기하게도 꽤 잘 어울렸으므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두 영화의 O.S.T를 동시에 감상할 수가 있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