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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의 액션도 스턴트우먼의 역할도 많이 늘었다
배동미 사진 백종헌 2021-11-10

이서영 스턴트우먼

여성 캐릭터의 액션 신이 늘면서 스턴트우먼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올해로 4년차인 이서영 스턴트우먼을 만나 여성의 스턴트에 대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킹덤> 시즌2에서 좀비가 된 중전(김혜준)을 연기했고, 영화 <변신>에서는 악귀 씌인 소녀의 와이어 액션을 책임진 인물이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 <유령>에서는 박소담 배우의 액션을 맡기도 했다. 스턴트우먼의 역할은 카메라 앞에서 배우를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우의 트레이닝을 책임지고, 무술감독이 짠 액션 신을 직접 시도해 완성해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촬영 현장에 와이어를 직접 설치하고 그 안전성을 시험하는 게 스턴트우먼의 몫이기도 하다. 파주시 서울액션스쿨에서 몸도 마음도 단단해 보이는 이서영 스턴트우먼을 만났다. 그에게 여성으로서 땀 흘려 운동한다는 것의 의미와 스턴트우먼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액션스쿨 내에서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나.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계속 숨을 헐떡이며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4시간 훈련 중 쉬는 시간은 다 합쳐 30분 정도다. 교육생 신분으로 처음 훈련할 때는 ‘내가 해냈다’는 느낌보다 ‘하루하루 버티자’라는 생각뿐이었다. 6개월 내내 온몸에 알이 뱄고, 첫 한달은 집 안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기어다닐 정도였다.

그런 고강도 훈련을 하면 몸이 어떻게 달라지나.

원래 우리 몸은 말랑말랑하잖나. 고강도로 운동하면 전신이 마네킹처럼 딱딱해진다. 또 다른 변화는 속도와 체공(공중에 머물러 있음을 뜻하는 말로 스턴트계에서는 수직으로 뛰었을 때 높이를 흔히 체공이라고 부른다.-편집자)이다. 남성과 여성은 몸 쓰는 방식이 다르고 근육량도 다르다 보니 속도와 체공에 있어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훈련하기 전과는 다른 자신이 된다. 운동 전보다 체공이 높아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그때부터는 ‘내가 여성이어서 어떻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여자도 하면 다 된다.

스턴트우먼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나.

주연배우의 스턴트가 되면 우선 전체 대본을 받아 읽는다. 싸움이 다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대본을 읽고 분석한다. 액션에도 마구잡이로 싸우는 게 있고, 각이 살아 있는 폼 나는 액션이 있다. 캐릭터에 따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훈련을 다시 하고 합을 새롭게 짠다. 전체 액션의 합이나 디테일은 무술감독이 짜고 스턴트들은 그에 맞춰 앵글 안에서 ‘다찌마와리’(일본말로 연극과 영화에서 난투 장면 혹은 싸움 연기를 말한다.-편집자)를 하고 영상으로 담는 액션 콘티를 제작한다. 무술감독이 그 결과물을 연출자에게 보여주고 수정할 게 있으면 동작을 바꾼다.

<킹덤> 시즌2와 <변신>에서는 어떤 연기를 했나.

좀비가 된 중전이 달리는 장면과 물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대역을 했다. 좀비가 그냥 달리는 신은 보조출연자가 연기해도 되지만, 물고 뜯으면서 넘어진다든가 지붕에서 달리다가 떨어지는 건 스턴트가 소화한다. <변신>은 액션스쿨을 수료하고 몇 개월 지났을 때 참여한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 악귀에 씌인 소녀가 등장해서 창문 난간에 매달리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직접 와이어 테스트를 하고, 배우가 안전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했다.

부상을 입은 적 있나.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했다. <외계인>에서 김태리 배우의 대역을 준비하면서 액션 콘티를 촬영하다가 십자인대를 다쳤는데, 콘티를 거의 다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수정하는 단계에서 바닥에 손을 안 짚고 도는 ‘하우스 턴’을 하다가 잘못 착지했다. 남들은 모르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질 때 특유의 느낌이 있다. 두둑 소리가 나고 몸이 울린다. 그길로 걷지도 못하고 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십자인대 파열은 축구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부상인데, 엄청 아팠을 것 같다.

아픔보다 무서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스턴트우먼의 자리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지만 아직까지 많은 편은 아니다. 부상당하는 순간, 내 자리는 다른 스턴트우먼이 메꿀 테고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큰 수술도 처음이었고 수술 후 6개월간 운동을 못하고 재활만 열심히 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예전과 몸이 달라서 후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운동해서 버틴 자리를 되찾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회복과 재활을 잘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작품은 무엇인가.

이해영 감독의 <유령>에서 박소담 배우의 스턴트 대역을 하고, 배우들 트레이닝도 맡아서 했다.

박소담 배우는 개봉을 준비 중인 <특송>에서 액션 연기를 경험했는데.

그땐 ‘막싸움’이었다고 하더라. 캐릭터끼리 엉키면서 싸우는 걸 스턴트계에서는 막싸움이라고 한다. <유령>에서 박소담 배우의 액션은 팔다리의 각도를 잘 지키면서 멋지게 싸우는 것이어서 다른 느낌이다. 합을 맞추면서도 자세를 신경 써야 했다.

막싸움과 각을 지키는 싸움 중 어떤 게 더 어렵나.

막싸움에는 힘이 많이 필요하다. 얽히고설켜 싸우고 바닥을 기는 동작도 있어 개인적으론 막싸움이 더 어렵다.

액션스쿨 내 스턴트우먼의 신장이 다양하다.

운동 능력은 기본이고 무술감독님들이 우선순위로 보는 건 사이즈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뒷모습만 찍어도 배우와 키 차이가 크면 보는 사람이 바로 알아차리고 대역 티가 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여자배우의 액션 신을 스턴트맨이 많이 했지만 요즘은 스턴트우먼이 맡는 추세로 굳어졌다. 여성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엔 한달에 한번 촬영 나가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여성캐릭터의 액션이 많지 않은 데다 있더라도 스턴트맨이 소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성 캐릭터의 액션이 많이 늘었고 그만큼 스턴트우먼의 역할도 많이 늘었다.

스턴트계에서는 신체 조건을 사이즈라고 부르나.

그렇다. (웃음) 무술감독님들이 카카오톡으로 “사이즈 한번 보내봐” 하면 이름, 키, 상의, 하의, 신발 치수까지 써서 답장을 보낸다. 발 치수까지 꼭 맞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배우와 똑같은 의상을 제작해서 입었을 때 맞아야 해서 그렇다.

96년생으로 올해 26살이다. 언제 스턴트우먼이 되겠다 생각했나.

23살 때 액션스쿨에 들어왔다. 어릴 때 여자배우들이 와이어 타고 액션 연기하는 예능 프로그램 <레이디 액션>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재밌게 보고 잊고 살았는데 대학 때 스턴트 배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고 다시 욕심이 생겼다. 재학 중이던 수원여자대학교 연기영상과를 졸업하자마자 시험을 치르고 액션스쿨에 들어왔다.

프리다이빙이 취미라고.

액션스쿨에서 6개월간 훈련받으면서 프리다이빙, 스킨스쿠버, 승마를 일주일씩 배웠다. 프리다이빙은 그때 처음 해봤는데 재밌었다. 호스 하나를 입에 물고 숨을 최대한 몸속에 많이 넣은 다음, 호스를 입에서 빼고 그대로 다이빙해서 물속으로 쭉 들어가는데 매력적이다. 솔직히 일주일 만에 그 운동을 내 것으로 만들긴 어렵잖나. 액션스쿨을 수료하고 나서 프리다이빙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 자격증을 땄다. 처음엔 수중 7m 아래로밖에 못 들어갔는데 지금은 20m까지 들어간다. 현재 레벨2 자격증을 딴 상태고 레벨3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턴트우먼으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내가 만족하는 그림을 얻고, 현장의 스탭들도 만족하는 그림을 얻어서 박수 받을 때 가장 뿌듯하다. 박수가 그때까지의 고생의 대가처럼 느껴진다. 그때 느끼는 희열이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