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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F #8호 [인터뷰] '보톡스' 카베 마자헤리 감독
김현수 사진 백종헌 2021-10-29

여성의 삶을 마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란의 카베 자마헤리 감독이 연출한 <보톡스>는 현대 이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으며 살아가는 내재화된 억압과 폭력을 풍자하는 부조리극이다. 우연한 사고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크람이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동생 아자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오빠가 아니라 언니를 택한다. 사건을 은폐하고 시체를 유기하고 비밀을 감추려는 두 자매의 고군분투 속에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이들의 고단함과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이란의 사회적 문제에 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보톡스>로 연출 데뷔한 카베 자마헤리 감독은 자신이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완성했다. 가족 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통해서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 <보톡스>는 평범한 블랙코미디가 아니다. 우연히 범죄가 발생하지만 그 안에 ‘이란’이 지닌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영화인가.

= 주인공인 아크람은 내가 잘 아는 지인 중 한 사람, 즉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다. 오랫동안 그 분을 알고 지내면서 꼭 그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꽤 많은 시도를 했지만 여러 차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좋은 각본을 쓰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영화 연출 경험이 적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처럼 허구의 이야기가 더해진 극영화로 완성하게 됐다.

- 언니 아크람을 연기한 배우 수잔 파바르와 동생 아자르를 연기한 마흐도흐트 몰라에이의 연기가 놀랍다. 이들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 수잔 파바르는 이란의 유명한 코미디 배우다.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지만 어떤 작품에서도 주연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정극 연기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나로서는 위험을 감수한 캐스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잔 역시 선뜻 출연을 결정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모두 만족하고 있다. 그녀는 아크람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방향을 잘 잡아주었다. 아자르를 연기한 배우 마흐도흐트 몰라에이는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신인배우다. 사진을 비교해가면서 얼굴이 닮은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노력했다.

- 아크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 아크람이란 인물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장애 때문에 오빠의 죽음을 어느 순간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 서서히 그의 죽음을 그리워하다가 급기야 헛것을 보는 지경에 이르러야 했다. 슬픈 장면이지만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웃긴 장면에서 슬픔을 느끼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보톡스>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지만 이야기가 아크람을 중심으로 흘러가야 했다. 또 생각이 많고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내고자 했다.

- 아크람이 지닌 장애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가 발생하고 그것을 수습하는 자매의 모습 속에는 가부장 사회에서 그들이 오랫동안 겪어왔던 부조리함, 폭력의 역사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장센을 비롯한 많은 요소들이 코엔 형제의 <파고> 같은 영화의 기운을 닮고 있는데 혹시 <파고>를 참고하거나 하지는 않았나.

= 여러 영화제에 다니면서 이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물론 <파고>는 좋아하는 영화가 맞지만 그 영화를 참고해서 만든 건 아니다. 굉장한 영화와 <보톡스>를 비교해주니 기분은 좋다.

- 아자르가 근무하는 병원은 미용전문 시술을 주로 하는 곳으로 ‘보톡스’ 시술을 하는 곳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을 문제들을 희비극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에서 언니 아크람이 지닌 장애가 아니라 동생 아자르의 직업과 연관된 제목을 짓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 이란에서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톡스의 실제 의료적인 기능을 살펴보면 얼굴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일종의 마비를 시키는 것이다. 보톡스를 맞아서 사람들의 얼굴이 마비가 되는 장면과 아크람이 꿈을 꾸는 것 같은 신비로운 장면이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보톡스의 기능적인 면은 아크람이 영화에서 겪게 되는 일, 그녀의 행위와 관련이 있다. 오빠를 죽게 만든 장본인인 아크람은 영화의 엔딩에서 자신과 여동생까지 죽이는 꿈을 꾸게 되지만 그 꿈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만드려는 의도가 있었다. 보톡스의 기능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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