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회를 맞이한 강릉국제영화제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움츠러들지 말고 삶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다짐이자 기원을 담은 ‘Turn the pag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미래의 극장과 영화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새로운 장의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이사장을 맡은 그는 영화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오프라인, 즉 대면의 장에 있음을 강조한다. 관객과 시민, 영화인들이 직접 극장을 찾아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담론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영화제’의 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이기에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영화제 안팎의 살림을 챙기고 있다. 영화제 개막식을 하루 앞둔 10월 21일, 그를 만나 강릉과 영화, 극장과 영화제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에 관해 물었다.
-최근 강릉에는 곳곳에 카페 거리, 수제 맥주 브루어리 등 젊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들이 생겨나기 자리잡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강릉의 지역색과 영화제라는 행사가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 거라 기대하고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재작년 1월경에 강릉시로부터 영화제 이사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때 강릉이 지닌 역사, 문화적인 배경과 최근에 조성되고 있는 마을들의 분위기, 그리고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강릉에 조성된 각종 시설들, 시민들의 의식 등을 살펴보게 됐다. 영화제를 개최하기에 적합한 도시라는 판단이 섰다.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영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강릉영화제는 오히려 오프라인 중심의 행사 성격을 강화하고 나섰다.
=문화관광도시를 지향하는 강릉시의 입장에서도 영화제만큼은 오프라인 행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최해도 좋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물론 관객과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방역당국과 협의 하에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최대한 관객을 수용하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다른 도시에 비해 확진자 비율도 적고 거리두기 3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행사인 ‘강릉 포럼’에서는 지난 2회에 걸쳐 세계의 영화제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21세기의 영화제 운영 방안, 그리고 팬데믹 사태에 대한 저마다의 대응 경험을 공유해왔다. 영화제라는 행사가 지닌 비전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될 텐데 올해 포럼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계획인가.
=올해 포럼의 주제는 ‘당신은 여전히 영화(관)를 믿는가?(Do You Still Believe in Cinema?)’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가 극장이다. 또 올해 칸 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 등은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오프라인으로만 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다. 극장이 위기인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은 여전히 극장을 믿느냐고 질문하는 것이 시의적절하다고 봤다.
-강릉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및 행사 구성에서 영화제의 미래를 고민하는 영화제를 지향함과 동시에 ‘문학 영화제’로서의 정체성도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이 느껴진다. 두 가지 방향과 비전을 모두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올해 행사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나.
=시나리오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영화의 바탕은 문학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영화제가 지닌 고민과 영화의 틀에 관한 고민. 두개의 기둥이 서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얼마든지 협업 가능하고 밀착된 관계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수많은 영화제를 다녀보면서 집행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들과 만나게 되지만 행사나 마켓에 참석해 필요한 영화를 골라 보고 돌아갈 뿐이었다. 함께 모여서 고민을 토로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어디에서도 없었다. 강릉에서 그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영화제 입장에서는 강릉이 지닌 고유의 지역색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 행사장에 관한 고민도 중요해 보인다. 올해는 강릉 곳곳의 책방이나 카페, 강릉대도호부관아 같은 유적지도 활용했다.
=작년까지는 주 행사장이 아트센터라는 곳이었다. 좌석수는 많이 확보할 수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올해는 주요 행사장을 시내 중심가로 옮겼다. ‘강릉대도호부관아’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중앙관리들의 숙소로 쓰이던 곳이다. 관아라는 옛 건물에 스크린을 설치해 매일 야외 상영을 하도록 꾸몄다. 곳곳의 책방에서 문인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자리도 우리 영화제가 내세우는 특색 있는 공간 활용이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영화에 등장했던 촬영지인 봉봉방앗간이란 카페도 좋아할 것 같다.
-팬데믹 상황이 정상화되고 극장이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게 된다면 어떤 영화제로 만들어 나갈 계획인가.
=시내 중심가에 짓고 있는 롯데시네마가 내년 즈음에 준공되리라 기대하는데 CGV 강릉, 롯데시네마, 신영극장 등을 중심으로 좌석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200여편 정도로 초청 편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고, 또 초청 게스트도 확대해서 보다 많은 해외 게스트들과 영화인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강릉을 영화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제가 지역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