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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7호 [인터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직 우리 둘뿐이어서”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21-10-12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박송열 감독, 원향라 배우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상영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낯선 감각과 유머로 관객을 당황케 만드는 영화다. 주인공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한 젊은 부부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 상황은 심각하나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도덕적이어서 영화는 종종 웃픈 코미디가 된다. 영화에서 부부로 출연하는 박송열과 원향라는 실제로 부부다. 박송열은 이 영화의 감독이며, 배우인 원향라는 박송열 감독과 함께 영화의 각본, 제작, 촬영, 편집 등에 참여했다. 인디펜던트 그 자체인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엔 반드시 박송열과 원향라, 두 사람이 필요했다. 미래가 너무도 궁금한 부부 영화 제작단을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됐다는 연락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박송열 내심 기대는 했지만 정말 초청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옆에 있던 향라씨는 눈물을 보였다.

원향라 부산영화제는 정말 가보고 싶은 영화제였고, 그래서 너무나 감격했다. 그날은 기분이 좋아서 종로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제목은 어떤 의미로 지은 건가.

박송열 첫 장편영화 제목이 <가끔 구름>인데, 인생을 날씨에 빗대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영화 제목도 날씨 표현에서 찾으려는 편이다. 이번 영화 속 인물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라고 제목을 지었다.

-연출은 박송열 감독이 하고, 각본, 연기, 촬영, 편집, 제작은 두분이서 함께 했다. 거의 부부 가내 수공업 수준이다.

박송열 첫 장편 <가끔 구름>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했다. 셀프카메라 형식으로 카메라를 세워두고 그 안에 우리가 들어가 연기하는 방식. 그러한 방식을 한번 더 시도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한 방법일 수 있지만 경험해봤기 때문에 한편으론 자신감이 있었다.

-협업과 분업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박송열 연기는 배우인 향라씨가 책임을 진다. 내 연기도 향라씨에게 확인받는다. 나는 촬영이나 숏 구성 등 연출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시나리오 초안은 내가 썼고, 이후 함께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지금과 같은 제작 방식이 자연스럽고 편한가.

박송열 두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물리적으로는 힘들다. <가끔 구름> 때는 이 작업을 또 하라고 하면 당장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3년쯤 시간이 지나서인지 다시 에너지가 채워졌고 그래서 도전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영화의 주인은 오직 우리 둘뿐이어서 모든 결정을 우리가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투자를 받아 영화를 찍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텐데,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생각과 느낌대로 갈 수 있으니 과감한 시도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원향라 배우 입장에서 좋은 건 마음에 들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다른 현장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선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연기할 수 있다. 물론 둘이서 거의 모든 작업을 소화하는 게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외부 촬영을 하러 가면 무거운 짐을 둘이서 들고 다녀야 하니 말이다.

박송열 외부 장면에선 촬영감독이나 녹음기사가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집안 내부 촬영이고 우리 둘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촬영감독을 구하는 게 이 영화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다. 어떻게 구상하고 쓰게 된 이야기인가.

박송열 영화 촬영 방식, 셀프카메라 방식의 제작 시스템을 먼저 결정했다. 그런 다음 이 시스템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큰 사건을 다룰 수는 없을 테니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실직 문제도 사회적으로 대두되던 상황이었고, 경제적 어려움에 관한 이슈에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구직 활동 중인 부부의 이야기, 겁도 없이 사채에 손을 대는 사건을 떠올렸다.

-영화의 기저에 독특한 유머가 깔려있다.

박송열 경제적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는 흔한 소재일 수 있다. 흔한 느낌은 탈피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방식이 뭘까 고민했고, 흔히 말하는 ‘웃픈’ 웃음의 코드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에는 웃음의 포인트를 세세하게 담아내기 어려웠지만 머릿속으로는 영화의 톤을 그려놓고 있었다. 촬영하면서 또 편집하면서 웃음의 코드를 살리려 노력했다.

-정희와 영태 두 캐릭터에는 두분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나.

박송열 영태 캐릭터에 내 성격이 들어간 건 부정할 수 없다. 영태는 소심한 캐릭터라고 설정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이를테면 ‘네가 잘못했으니 나한테 사과해’라고 말한 뒤 진짜로 사과를 받으면 괜히 미안해지고 마음 약해지는 소심한 인물. 영태는 그런 소심함의 연장선에서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건 극영화다.

원향라 정희의 출발점은 의존적 인물이라는 거였다. 정희는 엄마에게도 의존하고, 미선이라는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믿기도 한다. 마음이 연약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 철두철미하려고 노력한다. 정희는 언제나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도 철두철미하게 대비하는 강박적 성격 때문이다. 나는 정희가 아니고, 사채 이야기는 창작한 건데 실제로 지인들이 물어보더라. 진짜로 사채 쓴 거냐고. (웃음)

-부부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조심한 것이 있다면.

박송열 제일 경계했던 건 자기 연민이었다. 최대한 내 감정에서 거리두기 하려고 했다. 연기할 때는 연기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작품의 방향은 시나리오에 있으니까,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사를 따라가는 것에 집중했다.

원향라 정희와 영태에게 우리 둘의 조각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모습과 그들이 사는 모습은 다르다. 우리 부부의 실제 모습이 노출된다는 생각이나 염려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태가 보여주는 선택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박송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계속 했다.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느꼈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부부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사채 문제는 엄마의 도움으로 해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현실의 어려움이 부부에게는 마음의 괴로움으로 남아있다고 봤다. 영태의 경우, 믿었던 선배인 명수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게 괴로움이라 생각했다. 영태는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보고자 야밤에 해코지를 하러 가지만 막상 그 순간 영태는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을 맞서서 이기려 하지 말고 피하자, 회피하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것이다, 라고 결론 내린다. 그것을 엔딩으로 담았다.

-그런데 두분은 어떻게 만났나.

박송열 단편영화 <엄마의 주먹밥> 촬영장에서 배우와 스탭으로 만났다.

원향라 막연히 연기가 하고 싶어서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다. 졸업하고 오랫동안 연극을 했는데,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은 어릴 때부터 쭉 품고 있었다. 그러다 2016년에 단편 <엄마의 주먹밥>이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내게도 영화 필모그래피가 생겼다. 물론 그 전에도 단편독립영화를 찍었지만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없다. 그러면 내 연기를 보여줄 기회도 없더라. 배우 생활을 꾸준히 해도 세상에 드러나야 검색도 되고 사람들이 알게 되는구나 싶었다. 이후 박송열 감독을 만나 <가끔 구름>도 찍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도 찍었다. 이렇게 연기할 수 있는 것이 감격스럽다.

박송열 나야 말로 원향라 배우 덕에 <가끔 구름>도 찍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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