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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4호 [인터뷰] 하마구치 류스케가 말하는 우연의 마법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21-10-09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인터뷰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는 부산영화제 상영작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단숨에 표가 동나버렸다. 세편의 단편을 묶은 <우연과 상상>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일본 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뜨거운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를 부산에서 만나 그가 길어 올린 마법 같은 영화적 순간들의 비밀에 대해 물었다.

-어제(10월7일)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두 편의 영화 상영과 GV(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의 흥미진진한 스페셜 대담까지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다. 관객의 반응을 온몸으로 느낀 어제 하루는 어땠나.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은 두고두고 큰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관객들 역시 따뜻하게 환대해준다는 느낌이었다. 3시간짜리 영화(<드라이브 마이 카>)나 단편영화 모음(<우연과 상상>)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을까 싶었고 이런 영화를 즐길 기회도 사실상 많지 않은데, 관객들이 영화를 열심히 즐겨주는 게 느껴져 나도 덩달아 열심히 대화에 임했다.

-<우연과 상상>은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만들던 당신의 단편 모음이라는 점에서, 그 시작의 계기가 더욱 궁금한 프로젝트다.

=기본적으로 단편영화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한다. 단편 작업은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 대한 복습도 되고 다음에 만들려는 작품의 예습도 된다. 장편에 비하면 편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시간을 조금 덜 들이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단편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3편의 단편을 하나로 묶으면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배우들도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이었던 건 내게는 <해피 아워>를 함께 한 인디펜던트 팀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준비한다면 시간도 절약하고 작품의 완성도도 챙기는 프로젝트가 가능하겠다 싶어 <우연과 상상>을 시작했다.

-단편과 장편은 영화의 목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우연과 상상>은 어떤 목표로 임한 작품인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는 단편과 장편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글을 쓸 때의 느낌은 비슷한데, 단지 장편은 여러명의 인물이 등장하니까 관계도 복잡해지고 파생되는 이야기도 복잡해진다. 단편엔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의 수가 적다. <우연과 상상>에서 시도해보고 싶었던 건 두 사람의 대화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더불어 연출의 기본을 단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연과 상상>은 마법 같은 순간들로 채워진 영화이고, 첫번째 에피소드의 택시 안 대화 장면에서부터 그 마법이 시작된다.

=내게는 텍스트를 맨몸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 배우를 통해서 텍스트가 다른 느낌으로 변해가는 걸 보는 것 자체가 마법이다. 클라이맥스 장면이 중요하다는 건 감독도 알고 배우도 알고 있어서 모두가 집중해 찍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평범한 장면에서 배우들이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의 택시 안 대화 장면이 그런 것 같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이건 즉흥적으로 찍은 거야?’라고 묻기도 하는데, 장면 속 대사는 모두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대로다. 사람들이 즉흥적이라고 느낀 건 자연스럽게 느꼈다는 뜻이라, 나 역시 그런 반응이 흥미롭다.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선 특별할 게 없는 장면이었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구상했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배우들과 소통하며 만든 결과인지.

=최근엔 거의 후자의 방식으로 찍는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쓸 땐 텍스트에만 집중한다. 어떻게 이미지를 연출해야지, 어떻게 숏을 찍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있는데, 그 놀라움으로 오케이 컷을 만들어 간다. 현장에서 텍스트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하는 편이다.

-스토리보드 작업은 하지 않는 건가.

=하지 않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선 베드신에서만 러프하게 준비했다. 베드신의 경우 스탭과 배우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찍히는지 그림을 알아야 하고 사전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스토리보드를 준비했다. 그 외 장면에선 미리 준비한 게 없다.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공통적으로 문학과 희곡의 텍스트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다. <우연과 상상>을 찍은 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이런 표현법을 더 확장해봐야겠다고 생각했나.

=낭독에 국한된 건 아니고, 두 작품은 얘기한 것처럼 연결되어 있다. <우연과 상상>을 만들 때 <드라이브 마이 카>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단편에서 시도했던 것들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한번 더 시험해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한밤중 달리는 차 안에서의 대화 장면. 두 번째 에피소드의 성적 표현에 관한 연출. 세 번째 에피소드의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요소들. 그런 표현들을 더 깊이 다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위해서 <우연과 상상>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니다.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배우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찍은 작품이다. 누군가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우연과 상상>이 훨씬 좋아요 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농밀한 결과물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내를 잃은 연극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그의 운전기사로 동행하게 되는 미사키(미우키 토우코)의 이야기다. 영화엔 이야기 속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다. 이 희곡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분량과 역할이 적지 않은데, 희곡의 대사와 오리지널의 대사가 경계 없이 섞이도록 만드는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나.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냐 아저씨>가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이끌어준 것 같기 때문이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캐릭터가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희곡 속 바냐 아저씨와 쏘냐의 관계를 통해 보여줬으면 했다. 그러니 <바냐 아저씨>는 나를 이끌어준 작품이고, 길을 보여준 작품이다. 오히려 두 인물을 표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있어서 좋았다.

-가후쿠는 <바냐 아저씨>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할 때 감정을 싣지 말고 천천히 대사를 읽으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본 리딩을 한다. 이건 당신이 영화를 만들 때 배우들과 하는 리허설의 과정과도 닮았나.

=닮았다. 실제로 배우들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대사를 읽게 하고 속도를 바꿔가며 읽게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배우들에게 소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다. 상대의 소리를 듣는 것. 아무 생각 없이 듣는 게 아니라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의 소리도 기억하고 상대의 소리도 기억하면서 대사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나는 배우들에게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내 생각에 연기를 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감정을 빼고 속도를 달리해서 반복해서 읽는 훈련을 하다 보면 그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영화에 3명의 한국 배우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가 출연한다. 어떻게 이런 보석 같은 배우들을 발견했을까 싶었다. 한국 외에도 대만, 필리핀 등 다국적 배우들과 다국적 언어로 소통하며 <드라이브 마이 카>를 찍었다. 그 경험에 대해 들려준다면.

=외국어 대사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외국어 대사의 의미를, 그 뉘앙스의 차이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를 들으면 소리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배우의 눈빛에서, 신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외국 배우의 연기가 문제없이 잘 표현됐는지는 현지의 관객들이 잘 알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배우 칭찬을 들으니 작업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한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응은 어떤가.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오진 않았다. 따로 영화를 보셨고, 재밌게 보셨다고 들었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은.

=코로나19 때문에 개봉 시기가 밀려 한해에 두편의 영화가 상도 받고 개봉도 하게 됐는데(<일본에선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개봉했고, <우연과 상상>은 개봉 예정이다_편집자주), 지금으로선 준비 중인 작품이 없다. 영화를 지속적으로 찍고 싶지만 서둘러 찍게 될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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