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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3호 [인터뷰] 임권택 감독, “지금 한국영화는 충분히 훌륭합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21-10-08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임권택 감독 인터뷰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2014년 <화장>까지, 60여년간 102편의 영화를 만든 한국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월 6일 개막식 무대에서 이루어진 시상식에는 임상수, 봉준호 감독이 시상자로 나서 임권택 감독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안겼고, 이를 지켜본 객석의 영화인들은 모두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개막식 다음날 만난 임권택 감독은 수상의 기쁨을 얘기하면서 재차 “이런 상은 노감독에게 줄 것이 아니라 한창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며 후배 영화인들을 생각하는 어른의 너른 마음을 보여주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현역 일선에서 벗어난, 영화 일을 쉬고 있는 시기에 상을 받게 되었는데요. 지금 한창 힘차게 일하고 있는 현역 감독들한테 상을 줘서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 상이 큰 격려가 될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 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이 들어요. 한편으론 이 상이 영화 인생을 잘 살았다고 위로하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상을 받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후배 영화인들에게는 감독님이 여전한 현역이 아닐까요.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죠. (웃음)

-후배 임상수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시상자로 나섰습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까지, 최근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인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던 시대에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변방의 영화였는데요, 요즘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우리가 변방이라고 인식되었던 시대를 살았던 감독으로서 보자면, 지금의 한국영화는 이미 세계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요. 살아있는 현재적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기쁩니다. 세계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이제는 조건도 다 갖춰져 있죠. 옛날과 달리 세계의 영화들을 수시로 체험하고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영화의 수준은 이미 상당합니다.

-감독님은 한국영화의 힘, 한국적인 영화미학을 선구자적으로 세계에 알려 오셨습니다. <씨받이>로 강수연 배우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게 1987년의 일이고, <춘향뎐>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2000년 칸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고, 2002년엔 <취화선>으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아 가실 때는 한국영화 감독으로서의 사명감, 책임감도 크셨습니까.

=일찍이 제 영화가 1980년대부터 해외영화제에 출품이 되었죠. 80년대만 해도 앞선 나라의 수준에 우리는 아직 이르지 못 했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고, 빨리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우리 영화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시상식 무대에서 “지금까지 백여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지간하게 만족스러운 영화는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겸손이 아니에요. 해도해도 성에 차지 않아요. 아직도 내 영화는 세계 톱 수준이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어요. 예술가도 그렇고 경제인도 그렇고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 거죠.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이걸로 만족한다, 라는 게 없어요. 부족함을 느끼는 고픈 마음이 결국은 영화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이었나요. 감독님의 삶에서 영화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죠. (웃음) 영화를 빼면 없어요. 내가 좋아했던, 무엇보다도 좋아했던 영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았다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늘 내 영화에 만족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늘 고프다 고프다 하면서 산 인생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살았다는 것도 어떤 면에선 대단히 행복한 일이죠. 나는 영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고, 그것이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다른 일에 장애 받지 않고 영화에 매달려 지금까지 오롯이 살아왔어요. 영화적 성과를 크게 이루었고 안 이루었고의 문제를 떠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문득문득 영화 촬영 현장이 그립진 않으세요.

=글쎄요. 오로지 영화를 삶의 수단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으로선 늘 영화를 하면서 살아야지, 해도해도 미완성인 어떤 부분을 완벽하게 채우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한국영화계가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후배 영화인들이 기운낼 수 있도록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위기는 있었어요. 늘 어려웠고 늘 위기라 생각하며 살아왔잖아요. 또 코로나19가 언제까지고 우리를 붙들고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꾸준히 살아 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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