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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호 [인터뷰] 위기일수록 빛을 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다운 모험 속으로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21-10-07

강소원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는 상대적으로 화제작의 극영화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만큼 영화제와 잘 어울리는 부문도 없다. 세상을 말하는 입이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금, 여기의 목소리들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주제적인 측면뿐 만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고민하고 치열하고 도전하는 미학적인 성취도 돋보인다. 만약 당신이 영화제만의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다큐멘터리에 주목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부문을 맡을 강소원 프로그래머는 “올해만큼 다채롭고 풍성하고 도전적인 한 해도 없었다”고 말한다. 본래 위기 상황일수록 빛을 발하는 게 다큐멘터리의 속성이다. 코로나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올해 다큐멘터리는 한층 풍성해진 만큼 크고 작은 변화들이 보인다.

=우선 여성감독들의 영화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수준도 올라갔다고 생각된다. 비단 올해만의 특징은 아니고 몇 해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중화권 다큐멘터리의 강세 역시 몇 년간 지속되고 있다. 편수로도 전체 출품작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질적으로도 다루는 소재가 다양하다. 워낙에 많은 영화가 나오니 편차도 큰 편이다.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할수록 다큐멘터리가 이에 화답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중국의 극영화는 검열이 엄격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대부분이 심의를 받지 않고 해외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다보니 검열의 흔적 없이 다채로운 시선들을 접할 수 있다. 올해 전반적인 특징은 아무래도 코로나 상황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영화들이 많았다는 거다. 코로나 현장을 담을 다큐멘터리들은 당연하고, 반대로 밖을 나갈 수 없으니 집에서 촬영하고 제작한 다큐멘터리들도 많아졌다. 짧은 시간 동안 격리상황에서 짜낸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고, 중국 우한에서 촬영된 영상들도 많았다. 중국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코로나 상황을 다큐멘터리들이 줄을 이었다. 남미 쪽은 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세 였는데 올해도 그 흐름이 이어졌다. 중동의 위기상황, IS를 소재로 한 영화들, 홍콩 시위를 배경으로 하는 질문들도 계속 되는 중이다. 논쟁이 될 만한 이슈를 다루는 다채로운 방식과 깊이 있는 관점들에 놀라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흔히 강한 메시지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올해 영화들의 결은 좀 다른 것처럼 보인다.

=맞다.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는 거의 없다. 메세지는 당연히 부각되겠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메시지 중심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이슈를 개인적이고 내밀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대만의 2.8사건을 다룬 <야생토마토의 맛>은 실제 희생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후대의 기억을 중심으로 공간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들에서는 묘한 공통점이 엿보인다. 조심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만큼 접근 방식에 공을 들이고 그래서 흥미롭다. 허철녕 감독의 <206: 사라지지 않는>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3년간 현장을 촬영한 기록이다. 단조롭지만 일관된 스타일이 도드라지는데 거창하고 설명하고 풀어내는 대신 담백한 전달을 통해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오재형 감독의 <피아노 프리즘>이나 오세연 감독의 <성덕>도 그동안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재를 영리하게 다루고 있다.

-역사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 외에 또 다른 개성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신다면.

=인도 영화 2편을 소개하고 싶다. 레바나 리즈 존 감독의 <여성전용 객차에서>,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무지의 밤>이다. 둘 다 여성감독의 작품이다. 사실 인도 역시 중화권만큼이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는다. 언뜻 보면 자극적인 소재도 많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만큼 끔찍한 일들을 직접 다루는 영화도 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이슈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그런 종류의 영화에서 여성들을 대체로 끔찍한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여성 전용 객차에서>는 일단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여성전용 객차에 탄 다양한 여성들, 주부, 대학생, 직장 여성 등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 이 영화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또 다른 인도여성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들은 모두 똑똑하고 자기 삶의 주체적인 존재들이다. 제한된 객차에서 촬영했음에도 인간의 얼굴을 포착하는 솜씨가 좋다. 그야말로 시네마틱한 장면들이 많아서 영화 미학적으로 접근해도 많은 영감을 안길 것이다.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무지의 밤>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어 황금눈상을 수상한 이 다큐멘터리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기반으로 한다. 스타일적으로는 파운드 푸티지에서 출발하지만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작품이다. 인도의 대학생들의 사랑과 꿈, 혁명에 대한 인식들을 엿볼 수 있다.

-<무지의 밤>처럼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다큐멘터리만큼 혁신적인 영화언어에 대해 고민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분야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올해 칸에서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 <카우>를 보면 무슨 말인지 대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피쉬 탱크>(2009),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을 연출한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젖소의 일생을 찍었다. 아무런 인터뷰나 내레이션도 없이 젖소가 탄생해서 자라는 과정을 집요하게 카메라에 담는데, 무형식의 형식이랄까.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기이한 힘을 지녔다. 아무나 찍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미니멀한 가운데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수시로 드라마틱해진다. 시네필이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올해 부산을 찾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팁이 있다면.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객석의 절반까지 관객을 받을 수 있으니 확실히 만남의 장이 늘었다. 작년에는 러닝타임이 긴 영화의 경우 열 명 남짓의 관객만이 볼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작년에 비해서 올해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이런 분위기가 영화제 전반에 퍼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야외 행사가 축소된 건 어쩔 수 없지만 부디 영화제 현장에 오셔서 분위기를 즐기시길 바란다. 미처 예약을 못하신 분들은 온라인 공개가 되는 단편 부문 영화들도 잊지 말아주시면 좋겠다. 영화는, 그리고 부산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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