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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루의 길' 박철우 감독…전통과 창작, 그 동행의 기록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1-08-14

전통이라는 각진 상자에 자루처럼 유연하게 담기는 음악. ‘상자 속 자루 음악’을 꿈꾸는 3인조 국악그룹 상자루에는 한때 기획팀 멤버이자 영상 홍보 담당이자 전통음악 비전공자인 네 번째 멤버가 있었다. 상자루의 산티아고 순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상자루의 길>을 찍은 박철우 감독이다. 그는 상자루와 장단을 맞춰 전통의 의미를 골몰했으며, 창작의 여정을 함께했다.

상자루를 향한 감독의 애정 고백이자 진심 어린 편지이기도 한 영화 <상자루의 길>은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 한국경쟁’ 섹션에 초청되었다. 박철우 감독에게 그 마음의 출처를 물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안내문이 나온다. 폭력적인 언어, 육식 및 반 환경적인 행위를 경고하고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구를 신경 써서 삽입한 이유가 있을 테다.

=내가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걸 보는 관객 중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야 맞겠다고 생각했다.

-상자루 멤버들(권효창, 남성훈, 조성윤)과는 어떻게 처음 만났다.

=2015년도에 상자루 멤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당시 취미 삼아 티셔츠를 만들었다. 직접 입으려고 만들기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판매하기도 했다. 제작한 티셔츠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상자루 멤버 중 효창이가 그걸 보고 같이 옷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보니 그 친구가 학교 축제에서 공연했던 팀이더라. 그렇게 상자루 멤버들을 소개받고 친구가 되었다. 그게 “친구 하자”고 말하는,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장면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유튜브 시장이 크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상자루를 홍보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영상을 찍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에도 동행한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같이 가는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나서부터 꾸준히 상자루의 영상 작업을 도맡았으니까. 공연이 있으면 공연 홍보 영상을 찍었고, <상자루의 길> 이전에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상자루는 음악 활동에 전념해야 했고, 나는 영상 작업을 지속하고 싶었기에 지금은 아니지만, 산티아고에 가기 1년 전부터는 나도 기획팀 멤버라는 이름으로 상자루의 일원이었다. 악기 구성에서부터 장단까지 의논할 정도로 참여를 많이 했었다.

-유럽의 자연 풍광은 물론 외국인 친구들과 국악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상자루 멤버들이 전통과 창작에 대한 치열하게 고민을 이어가는 대목이다. 그 첨예한 대화에 감독은 어떻게 참여했나.

=나는 전통음악 전공자가 아니지만 상자루 멤버들은 나를 많이 존중해주곤 했다. 내가 볼 때 상자루 멤버들은 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 (웃음) 내가 그걸 정리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고, 이 친구들이 더 현실적으로 의미를 찾고, 당장 곡을 완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상자루타령’, ‘경북스윙’이 완성됐을 테다. 마지막에 학교로 돌아온 상자루가 연주회를 갖고, 각자의 진로 또한 모색해나가는데, 총 촬영 기간이 어떻게 되나.

=영화에 가장 많이 쓰인 부분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의 시간이고, 쿠키 영상 등에 나오는 소스들까지 포함하면 2015년부터 2021년 초까지가 영화에 담겼다.

-한때 상자루의 멤버였던 감독의 입장에서, 전통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오랜 시간을 상자루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상자루 음악을 정말 다 외우고 있을 만큼 상자루를 오랫동안 봐왔고, 그만큼 상자루를 좋아한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전통음악에 대해 배우고 여러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전통음악으로 대중음악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난관을 넘어가는 과정에 내가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복잡한 생각 없이 무언가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시기를 보냈기에, 상자루는 앞으로도 같이 가고 싶은 친구들이다. 한편으로 상자루는 내게 참 슬픈 팀이기도 하다. 상자루라는 팀에 계속 남고 싶었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꿈이나 경제적인 부분들로 인해 더 이상 같이할 수 없었으니까. 이런 여러 마음을 상자루한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는데 영화를 통해서 전달되면 좋겠다.

-‘2018년 장위동 철거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상자루의 길> 외에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예정인지도 궁금하다.

=단편도 연출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도 지속해왔다. 장위동 철거 현장에 상주하며 미디어 활동도 했고, 포항 지진 후 1년이 넘도록 대피소에 사는 분들을 만나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강제 퇴거 명령을 받아 학교와 재판을 벌이고 있는 교토대학교 요시다 기숙사 학생들과 관계를 구축해 촬영 허가를 받고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극영화 촬영도 자주 한다. 이번 제천영화제 한국경쟁 섹션에 같이 오른 <요선>이라는 작품 촬영을 내가 맡았다. 다음 연출작으로는 극영화를 만들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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