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1교통센터에서 XR 부문 ‘비욘드 리얼리티’ 전시를 열게 됐다. 팬데믹 상황에서 공항은 상징적인 장소가 돼버렸는데 이곳에서 전시를 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작년 7월 코로나 여파로 셧다운이 된 상황에서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작품만 SK텔레콤의 ‘점프’라는 플랫폼에서 공개했다. 선정했으나 전시를 하지 못한 작품을 하반기에 보여드릴 계획이었다. 전시 공간을 모색하던 중 VR이 다른 시공간으로 여행하는 형태의 미디어니까 공항에서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항도 하늘길이 막혀 있으니 여행을 가상으로 떠나는 컨셉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측에 제안을 드렸지만 여러 번 거절 당했다. 이후 협의를 통해 11월에 전시를 하게 됐고 유의미한 호평도 얻었다. 예를 들어 당시 리플렛을 여권 형태로 만들고 티켓은 비행기 항공권처럼 만들어서 여행과 전시의 인터페이스를 일치시킨 시도가 반응이 좋았다. 이를 인천국제공항 측도 좋게 보았다. 허브 공항이지만 문화 공항으로 변모하겠다는 내부의 목표와도 부합하는 전시였다. 그래서 올해도 인천국제공항과 같이하게 된 것이다. 부천 이외의 지역인 인천국제공항으로 장소(venue)가 확장된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장점이 있었다. 또한 칸국제영화제와의 계약 조건에 전시 장소를 특정해서 명기하도록 되어있었다. 부천은 방역단계가 올라가면 최악의 경우 전시 공간을 닫을 수 있는데 비해, 인천국제공항은 방역단계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도 최고 수준의 방역을 해야 하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게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작품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VR이 스토리텔링 매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예전에는 호러물이거나 아니면 신기한 것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오지를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내러티브가 가능한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이 VR로 만들어질 이유가 있었는가, 영화로 만들어도 되는 것을 굳이 VR로 만들 이유가 있는가, 이 미디어의 특징과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인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선정 범위도 넓혔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픽션,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대사가 없는 것, 인터랙션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작품들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안배했다. 이 시장이 아직 상업화가 되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들도 자료를 찾아서 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하게 작품을 소개해서 영감을 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칸 XR 뉴이미지 영화제 공동주최로 진행되는 ‘XR3’은 어떤 전시인가.
=VR이 가상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까지는 오프라인 기반이었다. 스크리너를 보내줄 수도 없고 OTT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가서 봐야 했다. 코로나 이후 VR과 관련된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그중에서도 작년 칸국제영화제의 VR 전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상 미술관 플랫폼을 사용한 전시였기 때문에 실제로 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관객이 아바타가 돼서 전시공간을 돌아다니고 유저들과 이야기하는 전시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이것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고사양의 PC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이러한 세팅을 해서 작품을 보여주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았다. 실은 칸국제영화제 측에서 먼저 제안을 줬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졌으니 아시아 거점 지역으로서 규모가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오프라인으로 전시를 꾸며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마침 영화제 기간이 서로 겹쳐서 우리 선정작과 칸 선정작을 동시에 전시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컨셉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왔더니 칸국제영화제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접속을 하면 버추얼 공간 안에 각각의 부스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작품을 보게 되는 구조다. 그러니깐 현실 공간이 있고, 가상 플랫폼이 있고, 그 안에 작품이 있는 몇 중의 레이어가 생기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미래적인 전시다.
-XR은 VR을 포함한 용어인데 아직 익숙지 않다. XR의 개념을 설명해준다면.
=용어의 기준은 기술적인 것이다. VR은 VR 헤드셋을 끼고 보는 모든 콘텐츠를 말한다. 그 콘텐츠엔 영상, 게임 등 많은 것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어떤 기기를 쓰고 보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각각의 용어들이 정의된다. 기술은 매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용어 정의를 새로 하고 있다. 2018년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서 용어 정의를 그만두고 XR(Extended Reality)란 새로운 표현을 쓰자는 논의가 나왔다. AR, VR 등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XR이란 포괄적인 단어로 써보자는 것이다. XR은 현실에 디지털 이미지, 정보들을 덧씌워서 레이어를 만들고 의미를 형성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엔 인문학적인 개념이 들어간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컴퓨터와 디지털과 기계와 소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람 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양상과는 다른 의미망들이 생기고 있고 이에 따라 인터페이스와 소통 방식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와 관련된 모든 행위, 콘텐츠들을 아울러서 XR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X는 변수를 의미하며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좀더 나아가 인류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적인 스토리텔링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올해는 앉아서 고개를 돌리거나 혹은 360도 회전하는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 활동 반경을 넓게 활용한 작품도 보고 싶은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작년에 선보인 <피치 가든>이란 작품이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인데 가로 세로 10미터의 섹터를 마련하여 관객들이 걸으며 체험할 수 있었다. 올해 부스 형태로 작품을 선보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VR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 때문이다. 이 기기는 컴퓨터에 직접 연결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에 가깝기 때문에 퍼포먼스가 좋지는 않다. 대신 대중성이 강하다. 너무 많은 셋업이 필요한 작품은 코로나 시국에 배급이 어렵기 때문에 창작자들은 퀘스트 기기에 맞춰 콘텐츠 제작을 하게 됐고 현재 트렌드가 되었다. 오큘러스 퀘스트로 인해 XR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는 영화제가 아니어도 XR 작품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따라서 좋은 작품을 모아서 선보이는 것이 영화제의 최종 목표가 되긴 어렵다고 본다. 창작자를 양성할 수 있는 창작 인프라 구축과 연관된 형태로 영화제가 발전해야 한다. 제작 지원, 네트워킹 지원, 영화제 마켓 기능, 케이스 스터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 중이다.
-개인적인 추천작을 꼽아준다면.
=<지상 최대의 쇼>. 달 착륙에 대한 거짓 쇼에 관객이 연기자로 초대된다. 관객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우주인 연기를 해야 한다. 유머 코드가 가득한 즐거운 작품이다. 관객이 작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잘 설계돼 있다. 그리고 <종이 새>가 있다. 남미 특유의 판타스틱하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여기서 종이 새는 두 세상을 매개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