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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고스트' 김은경 감독, 공포와 코미디의 균형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1-07-11

연이은 취업 실패에 낙담한 단짝 친구들 예지(한승연)와 호두(김현목)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집이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에 풀옵션까지 갖춘 주택에 입성하게 된 두 사람은 주거 빈곤 세대에게 허락된 월셋집의 행복을 채 누리기도 전에 그곳에 사는 귀신과 조우하게 된다. 단편영화 <망막>(2000> <오르골>(2001), 옴니버스 호러 <어느날 갑자기: 디데이>(2006) 등 공포의 세계에 꾸준히 천착해 온 김은경 감독이 한결 웃음기를 더한 신작으로 돌아왔다. <쇼미더고스트>는 짠내 나는 취준생들이 원혼과 소통하면서 벌어지는 작은 성장과 성취의 기쁨을 호러와 코미디가 교직된 복합장르의 매력 안에 옹골차게 담아냈다.

김은경 감독

-옴니버스 호러 영화 <어느날 갑자기>에서 <세번째 이야기 - D-day>를 연출했다. 정통 호러에서 이번엔 코미디가 결합된 B급 장르로 탈주했는데,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

=이전에 만든 단편영화와 옴니버스 작업에서는 주로 진지한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작업 과정에서 나 자신이 지치거나 무거워진 적이 많았고 조금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일을 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성취감이다. 한 편을 완성하기가 오래 걸리고 힘든 환경이다 보니 일이 주는 성취감을 얻기가 참 힘들었다. <쇼미더고스트>를 만들면서도 인생의 한 고비를 겪은 청춘들이 그 과정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성취감을 얻는 이야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마냥 무섭거나 우울하지 않고, 끝내 인물들이 밝은 무언가를 얻어냈으면 했다.

-건강한 기운이 돋보이는 두 배우, 한승연과 김현목을 캐스팅했다. 캐스팅에서부터 <쇼미더고스트>가 지향하는 색채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배우들이 철없고 유치한 인물들의 매력을 잘 살려주어 고맙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깊이가 느껴지는 배우를 만나고 싶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한승연 배우에게서 그런 면을 봤다.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지만 오랜 기간 스스로 다져온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김현목 배우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 온 배우인데, 그 경험들 덕분인지 평소에 하는 말들에서 남다른 내공이 묻어났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단편영화 제작 프로젝트였던 <황금시대>(2009) 이후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연출에 대한 갈증이 컸을 법하다. <쇼미더고스트>는 대중과의 접점을 모색하고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갈증이 너무 심했다. (웃음) 그 사이 다른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나이도 먹어가면서 심각한 이슈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 대중을 설득하는 작업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코미디로까지 나아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장르 영화의 내러티브에 있어 이야기를 쉽게 전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가능한가.

=공감되는 캐릭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닐까. 대단하고 특출 난 무언가가 아니라 누구나 이입할 수 있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 그래서 관객이 나의 모습을 그 안에 투영하고 몰입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화법도 달라졌지만 근본적으로 감독이 갖고 있는 정서 자체가 변한 것 같다. 실험적이고 음울했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한결 편안하고 희망적인데.

=내가 생각해도 많이 변했다. <어느날 갑자기> 이후 또 다른 공포영화를 준비하다가 엎어져서 크게 좌절했고, 한창 패배주의에 빠져 위축됐다. 그때 예술치료를 접하고 공부하게 되면서 영화의 치유적인 속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대단하고 거창한 작품을 만들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 매일을 잘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일종의 여유가 생겼다. ‘나 아무것도 못해’라는 식으로 의기소침했던 캐릭터가 종국에 ‘우리 한번 해볼까’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큰 성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쇼미더고스트>를 썼다.

김은경 감독

-스토킹 피해자인 귀신이 등장한다. <어느날 갑자기>에서도 화재 사건에 얽힌 귀신들이 등장하는데, 원혼이 등장하는 호러에 대한 취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원혼들이 가진 억울함이나 비극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면면도 볼 수 있다. 오컬트나 악령 등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나는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 무섭다기보다는 죽고 나서도 뭐가 그리 힘들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 그래서 공포를 더 세게 연출해야 할 때 오히려 멈춰 서서 원혼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과 더불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상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늘날 뉴스 지면을 채우는 화두들과 시의적절하게 조응하려는 노력도 느껴졌다.

=역시나 쉽게 이야기하고 전달하자는 측면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주목하려고 했다. 뉴스를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귀신의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할 때도 어떻게 그들과 연대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었다. 사람과 귀신이 서로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그럼에도 피하거나 꺼리는 게 아니라 일단 서로 마주하고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빙의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감정 이입 아닐까. 귀신도 그냥 다가와서 말을 걸고 싶은 것일 뿐인데, 사람은 그걸 무서워하고 귀신은 귀신대로 자신의 기구한 사연에 관해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서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웃음)

-<오르골> <망막> 같은 지난 단편영화들에서부터 <쇼미더고스트>까지 호러 장르에 꾸준히 밀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늘 무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명료히 의식되진 않지만 스멀스멀 느껴지는 내 안의 여러 모습들,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공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때는 내가 굳이 왜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가치를 받아들이게 됐다. 스스로 억압하거나 꺼려하는 내 안의 그림자와의 화해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공포영화는 나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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