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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66' 래 레드 감독, 필리핀 여성 감독의 새로운 가능성
임수연 2021-07-10

래 레드 감독은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버드샷>을 비롯한 미카일 레드 감독의 몇몇 작품에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다. 첫 단독 연출작 <여자와 권총>으로 Q시네마영화제 감독상·여우주연상·젠더감수성상을 수상하면서 감독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월드 프리미어로 부천에서 공개되는 <공동주택 66>은 정치적 메시지가 강했던 전작과 달리 래 레드 감독이 스릴러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다.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장르영화로 자신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는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공동주택 66>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원래는 필리핀의 아이원트라는 플랫폼에서 방송될 TV 시리즈로 생각하며 만들었다. 함께 시나리오를 쓴 케네스 다가탄과 함께 독일 시리즈 <다크>나 영화 <스탠 바이 미> 같은 시리즈를 만들자며, 이상한 상황에 처해진 청소년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이 시작되고 정부에 의해 필리핀의 가장 큰 방송국 네트워크가 셧다운 되면서 시리즈가 제작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이 영화가 되어 부천에서 상영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정말 기쁘고 영광이다.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과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구도가 대립된다.

=실제 필리핀의 하층민, 여기서 하층민은 진짜 슬럼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여기에선 어른이건 아이건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양심의 가책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범죄는 마치 유전자처럼 자식 세대에게 전해진다. 주인공 소년 태반 역시 어른들에게 이런 성향을 물려받아 범죄를 저질렀지만, 감옥을 나오면서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다가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계기로 이곳을 뛰쳐나오는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에 비해 장르적 색깔이 강하다.

=이번엔 팬데믹 시대에 사람들이 재밌고 짜릿하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이닝한 오락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컸다. 원래 호러나 서스펜스 장르를 너무 좋아한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 아리 애스터의 <유전>, 넷플릭스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처럼 밀폐된 구조에서 벌어지는 영화들…. 함께 작업했던 작가와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공포스러운 신은 나보다는 공동 각본가나 프로듀서들의 지분이 더 크다. 현실에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긴장감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공동주택에 사람이 하나 숨어서 살고 있다는 설정은 사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동주택 66>은 복도를 걷다 보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게 되는,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도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어디서 찍었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팬 걸>이라는 필리핀 영화가 있다. 파사이 시티에 있는 <팬 걸>의 촬영지에서 원래 찍고 싶었는데 팬데믹 상황으로 다른 장소를 대신 찾아야 했다. 그래서 미카일 레드의 <귀신 상담소>를 촬영했던 수녀원으로 갔다. 원래 참 깨끗한 곳인데 공동주택처럼 만들기 위해 쓰레기를 대거 가져와서 수녀님들에게 많이 죄송했다. (웃음) 수녀들의 영혼이 나오는 호러영화 <귀신 상담소>에 이어 <공동주택 66>까지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필리핀에서는 요즘 이곳이 호러 영화 로케이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자와 권총>은 성차별에 싸우는 여성을 담은 페미니즘 영화다. 시나리오를 썼던 <버드샷>에도 필리핀의 암울한 현실이 담겨 있다. <공동주택 66> 역시 오락영화로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 비판적인 면이 투영되어 있을 듯한데.

=필리핀에 사는 감독으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소외된 계층을 생각하는 건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오락영화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더라도 사회 비판적인 태도가 녹아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리핀의 하층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무언가를 훔치고 다른 이를 죽이는 등 강력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주택에 가보면 기본적인 급수도 잘 되지 않아서 집집마다 펌프를 갖고 나가서 물을 구해 와야 할 만큼 상황이 어렵다.

-원래 시나리오 작가였다. 감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시나리오 작가로서 영화에 참여할 때와 연출까지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르던가.

=아버지가 영화감독, 사촌인 미카일 레드도 아버지가 영화감독이다. 삼촌도 유명한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집안에 영화계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는 가급적 영화일은 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래서 새로운 의료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의대로 진학했다. 그런데 한 학기 다녀 보니 나랑 너무 안 맞는 거다.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에서 극작가 전공을 새로 시작하게 됐다. 미카일 레드가 <버드샷>을 만들 때 나에게 팀워크를 제안했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이후 영화나 드라마 각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본만 쓸 때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 내가 지지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원하는 걸 전부 글에 투영했는데, 감독이 되고 나니 이게 구현 가능한 장면인지 조심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웃음) 아직 나는 감독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감독, 여성 서사가 화두다. 필리핀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필리핀에서는 오히려 여성 감독들이 가장 터부시되는 소재를 거리낌 없이 다룬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각광받는 여성 감독들은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쪽이다. 내 사촌 미카일 레드나 라야 마틴은 장르영화,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잘 다루는 감독으로 알려진다면 여성 감독은 로맨스나 드라마에 강하다고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회 비판의식이 강하게 녹아 있는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좋은 여성 감독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그렇게 필리핀에서도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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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