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겜러’라는 말이 있다. 몇년 전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다. “이 사람 완전 즐겜러네요.”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요즘 승급이 있는 게임을 하는데… 다들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려고 열심히 하는데 가끔 슬렁슬렁 즐기기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즐겜러라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나도 어떤 게임 안에선 즐겜러였다. 동거인과 예전에 <파이널 판타지14>라는 온라인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탱커였고 나는 *딜러였다. 평소에는 낚시를 하고 재료를 채취하고 옷을 지어 입고 그렇게 평화롭게 지냈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던전에 들어가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럼 다른 뮤지션 친구들이 도와줬다. 우리는 조금 이상한 *파티였는데 *길드장 H는 무서운 몬스터가 나타나면 갑자기 목숨만 살려달라며 절을 하기 시작했고, 앞에서 모두를 이끌어야 할 탱커 동거인은 길치인 데다, 경치 보기를 좋아하여 뛰지 않고 걸어다녔으며, 몬스터에게 공격을 넣어야 하는 나는 전체 공격을 못 피해 매번 꽥 하고 죽었다. 어쩌다 우리 파티에 랜덤으로 끼게 된 선량한 게이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쭉정이들은 뭐지? 그런 사람들의 멸시와 상관없이 우리는 즐겁고 행복했다. 참으로 즐겜러였다.
게임 속에선 그게 가능했지만, 인생을 즐겜러로 살 순 없었다. 길을 못 찾아도 다른 유저가 길을 가르쳐주고, 공격에 맞아 바닥에 엎드려 있어도 다른 유저가 몬스터를 대신 무찔러주고,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만큼의 어려움만 존재하고, 몬스터에게 패배해도 잃을 것이 없고, 내킬 때 다시 도전하면 되고, 퀘스트를 끝내면 반드시 보상이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심지어 게임은 로그아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눈을 감아도 해가 뜨면 또 주어진 날을 살아내야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독일의 심리치료사 롤프 메르클레가 한 말이라고 한다. 한 심리치료사의 개인 의견이었다니! 나는 무슨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지침 같은 말인 줄 알았다. 나는 저 말에 종종 휘둘렸는데 일단 천재가 아닌 데다가, 내 노력은 항상 모자란 것 같았고, 무엇보다 도통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 뮤지션들이 눈을 반짝이며 ‘오늘 즐거웠으니까 됐어!’ 이런 말을 할 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건가, 어딘가 모자란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다른 뮤지션 누군가가 공연이 너무 괴롭고 무서워서 집에서 나오길 힘들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 이 길도 길이고 저 길도 길이구나. 이 타이밍에 격언을 하나 더 찾아보자.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또, 또, 또, 사람 가른다…. 못하긴 뭘….
세상에는 ‘즐기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고뇌하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도 있는 것 같다. 어느 쪽이든 ‘보여지는 존재’다. 예술가에게 이미지는 중요하다. 요즘 시대엔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새로운 예술가를 알게 되면 그의 인스타그램부터 살펴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멋지게 피드를 꾸몄는지, 몇명이나 그를 팔로하는지, 어떤 톤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지 본다고 했다. 이력서인 셈이다. 내 인스타그램은 어디 보자. 새로 산 스누피 장난감. 고양이 꼬마와 강아지 흑당이 사진, 창경궁에서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 등이 있다. 전혀 고뇌가 보이지 않는데. 아, 내겐 프로필 사진이 있지.
그 프로필 사진은 두 번째 책을 낼 때 찍은 것이다. 전략상 이 타이밍에 ‘작가 사진’을 한번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무엇이냐. 검은 목 폴라를 입고, 시선은 옆으로 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흑백으로 찍은 사진을 말한다. 출판사도 마음에 들었는지 띠지에 사진을 넣었다. 사진과 판매고의 연관 관계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낸 책 중에 가장 잘되긴 했다.
다양한 피드백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안심했다’였다. 그 책은 정신과에 가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런저런 몸부림을 치는 내용인데,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모습에 독자는 안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기쁨으로 감상을 전했다. 나는 마음이 상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생각했다. ‘사람을 행복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요소’와 ‘실제의 인생’과 ‘행복과 불행과 작품의 완성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많은 말을 들었다. SNS하는 작가는 다들 너무 깬다, 페미니즘 얘기 그만했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는 비밀이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오지은 트위터 때문에 망했다 등등.
한동안 프로필난에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다음엔 긴 시간 ’버티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러다 얼마 전 충동적으로 ‘즐겜러’로 바꾸었다. 집에 있던 안 쓰는 물건을 벼룩으로 올린 밤이었다. 6천원짜리 에뛰드 클렌징 오일, 5만원짜리 카드 지갑, 이런 것이었는데 필요한 사람들이 쏙쏙 사갔다. 뿌듯했다. 그리고 블로그를 되살렸다. 북유럽에서 사온 어쩌고저쩌고,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앤티크 어쩌고저쩌고가 아닌, 3500원짜리 코멕스 클린보틀과 5천원짜리 티보틀의 훌륭함에 대해 포스팅했다. 블로그의 신뢰도를 떨어트린다는 그, 토끼가 기분 좋게 뛰어가며 하트를 날리는 그림도 넣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인터뷰어에게 ‘욕심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요지는 ‘그 이미지에 성격 좋다는 말까지 듣고 싶으세요?’라는 뜻이었는데 이 또한 오래 생각할 거리였다. 당시 나에겐 어떤 이미지가 있고, 거기에 싹싹함은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쪽 사람들만 그런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순간의 이미지로 많은 것을 판단하고, 또 판단당한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예,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작업하고, 그런 와중에 트위터도 즐겁게 하고, 강아지, 고양이 배도 쭈물거리고, 코어 근육도 만들고, 그러다 핍진한 ‘작가 사진’도 찍을 겁니다.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어요. 나는야 즐겜러.
*각주
탱커 싸움할 때 앞에서 공격을 버텨주는 역할.
딜러 적에게 공격 데미지를 넣는 역할.
던전 무서운 몬스터가 있는 장소. 보통 길이 꼬불꼬불한 동굴이나 성 안으로 들어간다.
파티 게임에서 무리를 지어 공통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
길드 온라인 게임 안의 커뮤니티, 동아리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