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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미술감독 주병도
2002-05-15

돌 하나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주병도란 이름 참 많이 들었다. MBC에서 방영되는 거개의 쇼와 드라마 제작진 중엔 꼭 ‘미술 주병도’란 다섯 음절이 꼭꼭 박혀 있었다. 오락 프로그램 <건강백세>와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부터 슬금슬금 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꼬박 15년째다. 그런 그의 이름이 <취화선> 엔딩 크레딧에 척 나타난 건 어쩌면 필연이리라. 20억원이 넘는 돈으로 3천평에 가까운 부지 위에 개화기 조선 종로거리를 재현하는 일은 미술하는 사람에겐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하중의 부담감 역시 뒤따르는 일. 게다가 박광수 감독 등과의 영화작업으로 6편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그지만, 영화 안팎으로 사극이 처음이라 더욱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적 사실성보다는 일단 영화적으로 그림이 될 만한 조선시대 가옥의 모습을 찾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됐다. 방송을 통해 카메라가 들어가고 나오는 길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한 그지만, 정일성 촬영감독과 언제나 함께였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현장을 찾아와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임 감독이 아니었어도, 그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작업에 임했고, 스스로도 “잔인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인부들을 졸라댔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양수리 종합세트장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옥(舊屋)들이 옹골지게 들어찬 가운데 구한말 종로거리가 만들어졌다. “날림이 아닌, 의도된 바대로 이렇게 빨리 짓게 될 줄은 몰랐다”고 슬쩍 고백하는 그의 얼굴엔 만족감이 스친다.

개화당의 몰락과 함께 서해 끝자락으로 유배를 간 김병문의 집 장면을 찍을 때였다. 촬영장소에 갔더니 김병문의 집이라곤 간 데 없지 않은가. 제작부한테 들으니, 임 감독의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분명히 쓸 만한 한옥 한채가 거기 있었는데, 고만 세월과 시절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비단 그날뿐 아니라 임 감독이 그간 영화를 찍으면서 ‘다음 영화에 꼭 써먹어야지’ 하고 찜해 놓았다던 몇몇 옛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혹은 신식 가옥으로 탈바꿈해 제작부의 애를 태우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주병도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임 감독의 얼굴이 못내 안쓰러워 밤을 새워서라도 임 감독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집을 꼭 본 듯이 지어내곤 했다. 툭툭 내뱉는 임 감독의 선문답식 대화도 주병도에겐 오히려 도움이 됐던 부분. “어려운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단 화두를 던지듯 제시하는 몇 마디 말이 오히려 감독님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주병도의 설명에서, ‘돌 하나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놓인’ 종로의 풍경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임권택-정일성-주병도 세 사람의 마음이 일치된 결과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이어질 이들의 긴 인연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듯. 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프로필

1959년생

1986년 MBC 입사

오락 프로그램 <건강백세>로 데뷔

<우리들의 천국>을 비롯, 각종 드라마, 연예 프로그램의 미술 담당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영원한 제국>

<이재수의 난> 등 6편의 영화작업

<취화선> 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