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인공이 기존에 발표된 대중가요를 부르는 장면을 찍어서 널리 상영해도 괜찮을까. 촬영 중에 우연히 찍힌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해줘야 할까. 내가 서명할 영화 스탭 계약서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영화를 둘러싸고 무수히 많은 법률적 궁금증이 따른다.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공정법률라운지는 이런 영화인들의 법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업무를 담당하는 장서희 변호사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이하 공정센터) 서울분소에서 직접 영화인들과 대면해서 법률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과 학생을 포함해 스스로 영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전화와 이메일로도 상담 가능하다. 공정법률라운지는 영화인들이 궁금해하는 현안을 바탕으로 매달 외부 특강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3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최경진 영진위 공정센터 팀장을 만나 영화인들의 ‘리걸 마인드’를 함양시키기 위해 공정법률라운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우선 이름에 대해 질문하자, 딱딱하게 느끼는 ‘법률’ 문제를 이곳에서만큼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란 뜻에서 ‘라운지’란 단어를 붙여 ‘공정법률라운지’라고 지었다고 한다.
-공정법률라운지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범하게 됐나.
=영화인들의 법률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공정법률라운지는 ‘사후 분쟁 해결 이전에 사전 분쟁 예방으로’를 모토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편하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공정센터 자체가 2015년에 생겼는데 당시에는 일반 직원들만 있었고 법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직이 없었다. 제대로 된 법률 지식이 있는 인력이 영화인들을 직접 상담하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사후에 구제 절차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었다. 그렇게 2017년경 장서희 변호사가 공정센터에 입사하게 됐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공정센터 자체가 부산에 있어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과 직접 대면하는 법률 상담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공정센터는 영화인들이 공정법률라운지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영화인신문고를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2019년 기획재정부에 요청해서 예산을 편성했고 장 변호사도 지난해 9월1일부로 영진위 서울분소로 파견됐다. 공정법률라운지는 이런 절차를 거쳐 지난해 12월에 탄생했다.
-공정법률라운지는 영화인신문고,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는 어떻게 다른가.
=공정법률라운지는 계약서 상담부터 저작권 상담, 영화계에 적합한 ADR(소송 외의 대체적 분쟁해결,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편집자) 제도 이용 지원 등 전반적인 법률 상담을 진행한다. 반면 영화인신문고가 해결하는 사건의 약 90%는 임금체불이다. 영화인신문고는 영진위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현재 충무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영화인신문고에서 회의실이 필요하면 영진위 서울분소를 쓸 만큼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및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다. 본래 여기 영진위 노조 사무실에 둥지를 틀고 있었는데, 청진동으로 옮겨 새 출발을 했다. 피해자들이 편하게 상담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영진위에 들락날락하다가 가해자와 마주칠 수도 있어 사무실을 옮겼다.
-영화인들이 공정법률라운지를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영진위 서울분소 공정법률라운지를 찾아와서 상주하는 장서희 변호사와 상담하면 된다. 현장에서 바로 접수해서 면담할 수도 있고, 전화와 이메일로 사전에 접수한 뒤 면담할 수도 있다. 장 변호사가 상담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데 영화인들이 부담없이 와서 법률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도 상담할 수 있다. 02-320-3519로 전화하거나 [email protected]로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상주하는 변호사가 한명인데 감당하기 벅찬 업무는 아닌가.
=혼자 하기에 벅차긴 하다. 대신 법률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공정법률라운지에서 영진위가 관리하는 변호사 풀에서 전문 변호사를 연결해준다. 그때 발생하는 자문비용은 공정센터가 모두 지불한다. 다만 이후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영진위 공정법률라운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
=영화인들이 영진위를 비판하면서도 영화계의 유일한 공적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진위가 어떤 문제에 개입하면 영화제작사든 스탭이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금 더 노력한다. 그렇다고 영진위가 강제적으로 명령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중재 과정을 통해서 법적 소송으로 번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을 공정법률라운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법률라운지에서 법률 특강도 진행한다고.
=단체 단위로 법률 특강을 신청하면 특강 자리를 마련한다. 지방인 경우에는 출장을 가서 교육할 예정이다. 지난해 1월에 청계천 CKL(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제작형 라이브하우스)에서 특강을 열어 영화음악의 저작인격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갖는 정신적·인격적 이익을 법률로써 보호받는 권리를 뜻한다. 저작자는 자신이 작성한 저작물이 어떠한 형태로 이용되더라도 처음에 작성한 대로 유지되도록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배우가 영화 속에서 기존에 발표된 노래를 부를 때도 저작자가 저작인격권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편집자).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진행을 멈췄는데 오는 7월 말경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을 시작으로 한달에 한번씩 주요 단체들을 대상으로 법률 특강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영화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현안을 가지고 특강을 개최하려고 한다. 주제는 공정법률라운지가 임의로 정하지 않고 단체의 의견을 받아 선정할 계획이다.
-영진위에서 그동안 어떤 업무들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영진위에서만 일한 지 22년째다. 재무회계와 인사관리를 맡기도 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교무 담당을 맡기도 했다. 중간에 다른 업무를 한 적도 있지만 재무회계 업무를 총 10년간 담당하면서 과거 영진위에서 필름을 현상하고도 돈을 안 내는 제작사들을 자주 만나고 다녔다. 그때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영화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 갈등이 해결된다는 걸 느꼈다. 영화인들이 끝까지 상환을 못하는 경우는 개봉했는데도 수익이 안 나서 제작사가 진짜 돈이 없을 때뿐이었다. 이외에는 대부분 다 상환됐다. 한 작품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향후에도 계속 영화산업에 종사할 사람이라면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게 충무로 감수성인 것 같다. 당시 경험을 통해 중재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