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간단히 그린 그림을 뜻하는 스케치는 UFO와 함께 이야기할 때 복잡한 맥락을 지닌다. UFO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간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사진과 영상으로 담지 못했더라도 머릿속에 남은 상을 그림으로 남기는데, 이를 소위 ‘UFO 스케치’라고 부른다. 김진욱 감독의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 <UFO 스케치>는 국내 최고의 UFO 전문가인 맹성렬 교수가 UFO를 봤다는 사람들을 만나 기이한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UFO 스케치를 그려보는 여정을 다뤘다. 짧은 영상을 뜻하기도 하는 제목과 달리, 영화는 시골에서 UFO를 발견했다는 사람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UFO 연구에 매진해온 학자들 사이의 불꽃 튀는 대담도 담았다. 촌부와 학자, 그 누구도 괴짜로 과장되게 다루지 않는 미덕을 갖춘 <UFO 스케치>는 권위자연하지 않는 맹 교수의 태도와 많이 닮은 작품이다.
-어떻게 맹성렬 교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나.
=극영화를 준비했던 시나리오에 UFO 이야기가 등장했다. 맹성렬 교수의 저작 <UFO 신드롬>을 참조했는데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고 맹 교수를 만나보고 싶었다. 2016년 5월 연세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나 말고도 영화를 준비하는 친구가 맹 교수와 면담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 차례가 나였다. 맹 교수는 판타지영화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많이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눠보니 준비하던 극영화보다 그에 대한 기록이 우선돼야 할 작업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당황하는 사이 맹 교수가 멍하게 나를 보더니 홍대쪽 자기가 아는 곳에 가서 맥주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굳이 걸어서 가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앞장선 맹 교수가 길을 헤맸다. 남성 두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촌에서 홍대까지 15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가까이 걸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맹 교수와 함께 헤매면서 동질감 비슷한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앞으로 뭔가 이런 여정을 계속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때 우리의 만남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형식적인 만남에 그쳤을 것 같다. 맥주를 한잔 마시고는 맹 교수에게 그를 다큐로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은 UFO가 실제로 하는가에 대해서 집중한다. 설득력을 갖춰 UFO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가리고, 사실이라면 어떤 증거가 있는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건 UFO의 실재 가능성보다 거기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었다. 일반사람들이 상상하지 않는 엉뚱한 생각이 이 사람들의 인생을 지배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계기로 그런 관심을 가졌는지였고, 맹 교수를 따라가면 지도가 그려지지 않을까 했다.
-사례를 수집하는 과학자로서 맹 교수의 자세가 돋보이는 다큐였다.
=보통은 기이한 체험을 한 목격자들이 맹 교수에게 먼저 연락을 해온다. 대부분 검증받고 싶어서 과장되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은데 맹 교수는 아무리 비상식적인 설명과 묘사가 넘쳐나도 일단은 집중해서 경청한다. 그런 다음 과학적 검증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한다. 과학의 세계와 초자연적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자유롭고 호방한 에너지가 좋았다. 나는 그걸 기록하고자 했다.
-스마트폰으로 하늘을 찍다가 곤충이 날아든 걸 두고 UFO로 착각한 중년 여성 에피소드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맹 교수는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준 뒤 그에게 친절히 설명을 하는데, 시종일관 가볍지 않고 정중한 자세를 보였다.
=신기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일상인과 다른 방식으로 현상을 인식하고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 가족들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맹 교수는 그런 분들의 얘기까지 다 수집한다. 그중에서 본인이 주목할 것과 생략할 것을 가린다. 정말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새롭게 발견한 것이라면 짚어내서 이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검토한다. 맹 교수는 다만 전투기 조종사나 공항 관제사처럼 명확한 데이터를 인식할 수 있는 전문직종의 사람들의 증언을 가장 주목하는 편이다.
-익산 미륵산에서 UFO처럼 보이는 불빛을 볼 때 느낌은 어땠나.
=찰나였다. UFO 영상을 찍으려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욕심이 났다. UFO 관련 영화를 찍는데 UFO를 정확하게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내가 애초에 생각하는 작업 과정과 달랐지만, 현장에서 이상한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맹 교수처럼 자기 연구를 하면서도 UFO에 관심을 두는 지영해 옥스퍼드대 한국학 교수와 맹 교수의 대담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영해 교수에게 맹 교수 다큐를 만들고 있으며 두 사람이 대담하는 장면을 꼭 찍고 싶다고 이메일로 연락했다. 맹 교수는 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이고 지 교수는 한국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맹 교수는 증거를 중시하고, 지 교수는 아직 인간이 다 알 수 없지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얘기 중 어느 것이 맞다고 판단하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의 결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대담이었다고 생각한다. 지 교수는 UFO를 사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물고기의 눈에 비유한다. 물고기가 인간 세계를 관찰할 때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거다. UFO라는 것이 비행접시 모양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UFO 영상을 합성한 마지막 신은 실험영화와 같았다. 미확인 물체를 확대해서 픽셀을 드러내고 색조에 변화를 주고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를 변주했다.
=맹 교수가 “내가 겪은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당시에 사진을 못 찍었지만 기억을 조합하고 그 기억으로 UFO 스케치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인면조를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실물로 구현한 배일환 미술감독을 만나서 맹 교수가 본 이미지를 스케치로 남겼다. 결과물을 본 맹 교수가 종이에 그려진 이미지를 영상으로 재현해보자 제안했고, 원래는 배 감독이 엔딩 영상을 맡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도저히 배 감독의 스케줄이 안 맞았다. 그래서 다큐 제작진이 그동안 수집한 UFO 관련 영상, 직접 찍은 영상들을 조합해서 엔딩 영상을 만들었다. 명확한 상이라기보다 그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매체 음악가 박승순의 멜로디도 인상적이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박승순이 참여하는 라디오포닉스의 음악을 계속 들었다. 그러다 다큐 작업을 먼저 하게 되었고, 박승순을 찾아가 다큐에 삽입하고 싶다고 말해 흔쾌히 승낙을 얻었다. 신기하게도 음악과 영상이 잘 어울렸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또 해보고 싶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