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스텝 25시
발달린 아비드, 날개달린 편집
2001-03-22

<친구> 세트 에디터 박광일

프로필

1970년 생

1991년 맨해튼 칼리지 방송과 입학

2000년 뉴욕필름아카데미 입학

1999년 부산단편영화제에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랑> 단편 제출

2000년 아시아숏필름페스티벌 <샤워> 단편 제출

현재 사무실 CONET 운영, 단편 제작중

영화 <친구> 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3월 초, 막 출국 수속을 마친 박경일(32)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짐이라곤 한국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달랑 브리프 케이스 하나가 전부. 그 속에는 그가 직접 조립한 편집용

컴퓨터가 얌전히 모셔져 있다. 이미 미국의 촬영현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장편집기(set editing system)지만 한국에선

그에 의해 처음 시도된 터였다. 편집기라고 해도 특별한 외형을 갖춘 장비라기보단 일반 컴퓨터에 가까운 모습이다. 실제로도 업그레이드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다 동영상 편집전용 프로그램을 깐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필름의 아날로그적 이미지 신호를 편집 가능한 비디오 신호로 바꾸어주는

비디오데크만 갖추면 편집 준비는 끝난다. 그의 경우, 컴퓨터 관련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가방 안에 액정모니터와 키보드,

하드디스크를 설치하고 아도비(Adobe)사 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Premiere)’를 깔고나니 노트북보다 약간 큰 그만의 편집기가

완성된 것. 데크까지 갖추는 데는 1천만원 조금 넘게 들었을 뿐이다. 그보다 먼저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편집을 선보인 영화 <눈물>에 비해

가격면에서는 월등히 앞선 셈이다. 벌써부터 ‘발달린 아비드’라 불리며 현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의 편집기 덕에 <친구> 후반작업은

한달을 넘기지 않았다.

그간의 영화제작 방식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편집기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에서 바로 편집본을 볼 수 있다는 점. 그 동안 으레 후반작업으로 분류돼온 편집방식은 각종 오류나 미진한 부분으로 인한

재촬영이나 보충촬영면에서 비효율적이었다. 뒤늦게 발견한 오류 탓에 이미 철수한 스탭과 장비를 모으고 세트를 짓고 배우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작업은 두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류와 부족분을 현장에서 즉시 발견할 수 있는 현장편집은 자연스럽게 보충촬영과 재촬영의

여지를 줄여 돈과 시간을 절약하게 하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제작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가편집판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점도 이 시스템의 매력이다. 가편집한 내용을 토대로 본편집을 하므로 일일이 스크립터의 기록에 의존해 필름을 살피지 않아도 되니

편집에 소요되는 후반작업시간은 대폭 줄게 된다.

중3 때 부모님을 따라 도미한 박광일은 맨해튼 대학 방송과를 거쳐 뉴욕필름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는다. 당시 NYU 선배들이었던 <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황기석 촬영감독과는 이미 그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대학 새내기 시절, 한국으로부터 드라마 촬영차 온 방송팀을 도와 통역을 비롯한 잡일을 거들다가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만난 곽경택

감독이 그러했고, 방송사를 기웃대며 조명일을 거들다가 촬영조수로 있던 황기석 감독을 만난 것도 끈질긴 인연의 서막에 불과했다. 언제고 한번

모여서 영화를 만들자고 했으나 막상 <억수탕>과 <닥터K> 땐 바빠서 도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한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으나 앞으로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던 날, 그는 마음속으로 “언제간 다시 와야지” 혼자 다짐했단다. 그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심지현/ 객원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