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경선에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준비에 부산한 정치권 못지않게 코앞에 닥친 ‘영화계 정치 행사’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5월27일이면 바람잘 날 없었던 1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들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 구성된 위원회가 일을 시작하게 된다. 문화관광부(문화부)에서 지난 4월17일 유관단체에 위원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아 사실상 위촉할 위원 물색을 시작한 셈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이 흘러나오고, 특정인의 이름이 직접 거명되기도 한다. 현직 문화부 산하단체(기관)장이 위원장 후보라느니, 한 노장 감독이 위원장을 목표로 “뛰고 있다”(어디서 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문화부가 내정한 사람은 없고, 나돌고 있는 이름들은 감투 욕심있는 사람의 ‘자가발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위원 위촉권을 쥐고 있는 문화부(장관은)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영진위를 짜야 한다. 임기 3년 동안 위원장 세 사람에 부위원장이 세 사람이었던 혼선은 물론, 위원 위촉을 둘러싼 갈등으로 임기의 반 이상을 까먹도록 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1기 영진위의 파행은 구태에 빠져 있던 기구를 시대상황에 맞게 개편하는 과정의 통과의례라고 양해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 과오는 씻기 어려울 것이다.
1기 영진위 위원 위촉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을 두고, 영화계 내부의 반목과 알력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처럼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문화부에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정지영, 문성근, 김지미, 조희문씨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일을 하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나 안일한 현실 인식이었거나, 행정 편의주의였거나, ‘공무원주의’(일부 영화에서 ‘무사안일’, ‘복지부동’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안목이 본질적으로 다르고, 영진위와 위원들의 기능과 역할, 행정과 정책 등에 대한 이해도가 총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안배하고서 될 일이라고 판단한 것 자체가 갈등의 불씨를 던져놓은 것이었다.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이제 고스란히 문화부가 져야 한다.
문화부에 권고한다. 위원 후보를 물색하기 전에 영화진흥공사를 왜 영진위로 개편했는지에 대한 취지를 진지하게 되새겨보기 바란다. 그 취지에 동의한다면 어떤 사람이 위원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한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아울러, 영진위 설립 취지에 동의한다면, 출범 당시 영진위에 부여했다가 뺏앗아갔던 예산 편성, 집행 등과 관련한 자율권을 되돌려주도록 영화진흥법 개정을 발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1기 영진위가 파행을 겪으면서도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 있다. 위원 자리가 대단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고, 챙겨 먹을 떡고물도 없고, 현업에 종사하면서 겸직하는 경우는 오히려 제약과 역차별만 따르는 번거로운 자리가 아니었던가. 영진위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고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다. 또 위원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패러다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원로들을 예우하기 위한 의전용 감투가 아니다. 문화부는 그동안 준비하고 구상했던 사업을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는 효율성 높은 실무형 위원회를 구성해주기 바란다.
제발, “이회창 대세론이 난무하던 때 기고만장해서 개혁 성향의 소장 영화인들에게 ‘두고보자’는 폭언도 서슴지 않던 관료들이, ‘노풍’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태도가 돌변했다더라”는 이야기가 그냥 떠도는 소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