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면서 틈틈이 자신이 잘 찍히도록 카메라의 높이를 조절하는 사람을 일찌기 다큐에서 본 적이 있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동물의 날간을 으깨 먹으면서 그런 자신의 입에 딱 맞게 카메라를 셋팅해 놓는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집의 틈새들을 미친 듯 만지고 다닌다거나 주문을 외우며 팔을 허공에 흔드는 비일상적인 몸짓들은 또 무엇인가.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녀는 과연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할머니의 보자기들을 빨랫줄에 너는 상징적 행위를 했을까.
셀프 다큐인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금기시하는 작위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저기 어딘가 카메라가 있고, 그 카메라가 피사체로서의 김진아를 찍는다’, 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은 극히 몇 장면뿐, 김진아 감독은 아주 많이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하며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다. 삶은, 이 작품에서 퍼포먼스와 곧잘 혼동된다. 그것은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삶을 퍼포먼스화하며, 동시에 삶을 표현하는 별도의 퍼포먼스를 카메라 앞에서 실행하기 때문이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가 다큐로서 독특한 것은 바로 그런, 일상과 퍼포먼스의 모호한 경계에서 기인한다.
“어떤 날은 몇분만 찍은 적도 있지만 많이 외롭고 힘든 날은 거의 하루 종일 켜놓기도 했어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가 스물셋 어느 여름날 미국 유학을 가서 자폐적인 생활 속에 거식증을 앓고 8미리 비디오카메라로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그것을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것이 이 157분짜리 셀프카메라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보는 이를 거의 배려하지 않는 일기 같은 이 작품은, 스스로를 때린다거나, 동물의 날간을 으깨 먹는다거나, 불안에 휩싸여 창가에 앉아 운다거나, 너무 굶다 너무 먹어서 앙상한 팔다리에 배만 불룩이 나온 스스로의 나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거나, 하는 한 개인으로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가 담고 있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장면들을 건조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와 그녀 자신의 각별하면서도 기이한 관계가, 어쩌면 거식증보다 더 큰 이 작품의 소재다.
말상대이자 감시자인 카메라
<김진아의 비디오일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그녀 자신만 나온다. 미국 유학 중 찍은 것이지만 학교의 친구들이나 하다못해 가게 주인들도 나오지 않는다. 공간도 그녀 자신의 방뿐. 단 한번 학교 현관이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그곳의 텅빈 시멘트 바닥을 비출 뿐이다. “일기는 혼자 있을 때 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어요. 실제로 혼자이기도 했구요.”
거식증이 처음 기미를 보인 건 대학 4학년 무렵. 졸업을 생각하면서 뭔가 ‘여자로서’ 다른 것을 의식하게 된 그녀는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외할머니로부터 엄마가 그랬듯, 그녀도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의 첫 부분 ‘집을 떠나며’는 미국으로 가져가는 짐을 꾸리는 날의 이야기다. 예고도 없이 몇 년간 발길을 끊었던 외할머니가 그녀의 집에 찾아온다. 그리고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가지 말고 엄마랑 여기 있어라. 너는 몸이 약하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쫓아내고, 집을 떠나 김진아는 심한 거식증으로 빠져든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게 유일한 사회활동이었던” 때, 김진아 감독은 당시 “내 모습이 너무 추하다는 생각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있었다.” ‘특별해야 한다. 특별하지 못하다면 특별해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강한 자의식 속에 그녀는 마신 물 한 모금의 양도 기록하는 병적인 다이어트를 했고, 그렇게 타자의 시선에 마비된 김진아가 발견한 유일한 친구가 카메라였다.
비디오카메라를 모니터에 연결하고 빨간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카메라는 가장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말 상대인 한편 야단치고 감시하는 가상의 타자였다. 그 모순적인 카메라와의 관계가 병세와 더불어 깊어진 어느 날, 김진아는 폭식을 한 직후 카메라를 설치하고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깡마른 팔다리에 배만 불룩 나온 몸을 스스로에게 공개하며, 그녀는 비로소 오랜 병에서 한발짝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터질 듯이 부른 내 배에 들어 있는 게 음식이 아니라 아기라면? 엄마, 나를 가졌을 때 행복했나요?” 불룩한 배가 꼭 임산부의 배처럼 보여진 순간, 그녀는 자신의 ‘배’와 극적인 화해를 했다. “나는 음식을 거부한 게 아니라 엄마를 거부한 거였어요. 원래 엄마는 아기에게 밥의 의미죠.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 난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거부했던 거예요.” 그녀는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던 학교에 그동안 찍은 비디오테이프들을 들고 가 지도교수에게 보여주며 상담을 했다. “거식증은 사회적인 병이다. 왜 이걸로 작업을 하지 않느냐”는 교수의 말에 김진아는 어느 하루의 촬영분을 편집해 <빈 집>이라는 제목을 붙인 자신의 일기를 1999년 서울여성영화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피아영화제 등을 통해 남들의 시선에 공개했다. 처음이었다.
엄마와 화해하고 밥을 받아들이다
로스엔젤레스 칼 아츠에서 비디오아트를 공부한 김진아는, 페미니즘 비디오아티스트다. 나중에서야 비디오일기를 찍는 페미니스트 비디오 작가들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처음 카메라 앞에 설 때 그녀는 이것을 작품화할 생각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오직 자기만을 위해 6년간 비디오일기를 찍었고 나중에 그 중에서 한 테마로 담을 수 있는 2년8개월 가량을 157분으로 편집해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를 만들었다. ‘집을 떠나며’, ‘출발! 새아침’, ‘엄마의 웨딩드레스’, ‘벌거벗은 식욕’, ‘거울’, ‘엄마의 노래’, ‘하얀 빨래’, 시기별 7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 이 작품에서 ‘거식증’과 맞물린 또하나의 축은 ‘엄마와의 관계’다.
“나 하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보듬어 일으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고등어를 다듬을 수 있었을까.”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엄마에 대한 애증을 키워온 김진아 감독은 어느날 엄마에 대한 기억을 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학길 짐에 묻어온 박스 안에서 오래된 엄마의 영어회화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테잎에서는 영어회화가 나오다가 갑자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흐르면서 젊은 엄마의 음성이 들린다. “지나, 맘마 먹어야지, 맘마. 지나 배꼽 나온 거 봐라, 지나가 울어가지고 배꼽이 다 나왔어.” 아무렇지 않은 아기 보는 엄마의 이 말소리와 자장가는 마침 ‘다 큰’ 김진아의 배를 비추는 화면과 더불어 먹먹한 감동을 부른다. 그것은 스물다섯 당시 그녀의 상황에 아릿하게 들어맞는, 오래전에 잊은 엄마의 말들이었다.
외할머니의 누더기 옷들을 양지바른 곳에 널고, 김진아는 비로소 157분짜리 작품에서 처음으로 바깥에 나선다. 방바닥에 격자무늬 그림자로만 어른거리던 햇빛이 무한정 널려 있는 집 밖.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살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내 살 내 삶”이라는 아포리즘과 함께,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힘겹게 도달한 그 집 밖에서 끝을 맺는다.
6년간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거식증을 완전히 떨쳐낸 김진아 감독은 지금도 비디오일기를 계속 찍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자기 자신이 아닌 외할머니와 어머니, 자신에 이르는 모계 가족사가 일기의 주제이며, 그녀 자신 훨씬 생활인이 되어 있기에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중이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장편극영화 <그집앞>도 준비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그녀가 하고픈 이야기는 뭘까. 바로 ‘배’이야기다. 여성의 욕망이라면 흔히 성욕부터 접근을 하지만,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식욕. 모성을 수용하는 위장과 모태로서의 자궁, 그리고 한 인간이 타자와 연결되었던 유일한 흔적인 배꼽이 공존하는 배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남근 중심이 아닌 배꼽 중심의 담론이 그녀의 테마다.
비디오일기를 찍으며 김진아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러냈다. 그녀 스스로 말하듯 이 작품은 “온갖 제례들의 집합”이고 동시에 아주 기이한 방식의 일상기록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다큐 같지 않은 다큐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카메라와 한 인간의 깊은 소통을 기록해냄으로써, 일상을 연출없이 그대로 담아내는 게 다큐의 본성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깨고, 또 역설적으로 실천한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전주국제영화제 비디오다이어리 섹션에서 상영된다. 글 최수임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김진아의 장편준비작 <그집앞>
길 위의 여자들
김진아 감독이 준비중인 장편데뷔작 <그집앞>은 두 여자의 이야기다. 가인(‘집사람’)과 도희(‘길 위의 여자’)가 주인공. 26살의 재미유학생 가인은 어느날 유부남 준의 집을 방문하여 섹스를 하고 하룻밤을 지낸다. 섭식장애를 지닌 그녀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몸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은둔과 단식에 다름없는 다이어트를 4일째 진행하다, 통제 불가능한 폭식을 한다. 스스로의 추한 몸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지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고는 힘겨운 화해에 도달한다. 28살의 재미교포인 도희는 별거나 다름없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혼자 유럽여행을 떠난다. 암스테르담에서 친구 리의 집에 1주일간 머무른 그녀는 떠나기 전날 하룻밤 그와 사랑을 나누는데, 미국으로 돌아와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경구낙태약을 처방받아 한국으로 여행을 떠난 그녀는 낯선 서울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좁은 여관방에서 낙태약을 꺼내 머리맡에 놓고 배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국의 유니코리아 픽쳐스와 김진아 감독의 자체영화사 픽쳐북무비스가 공동제작하는 이 작품은 현재 캐스팅단계에 있으며 7월 미국에서 크랭크인, 모두 디지털로 촬영될 예정이다. ▶ 이규정, 김진아, 도발의 다큐 실험
▶ 카메라로 치유해가는 거식증의 기록 <김진아의 비디오일기>
▶ 스스로 재연한 사랑이야기, 이규정의 <사랑에 관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