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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추억의 공간이여
2002-04-24

비디오카페/9회/p찍음

며칠 전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붙어 있는 광고문 하나를 보고 나는 가슴이 싸아해지고야 말았다. 매직으로 대충 써서 복사한 그 광고문은 우리 동네의 ‘공간 비디오’가 점포정리를 하여 비디오를 싸게 처분한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 이 가게는 내가 고등학교 때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얄미운(이건 주관적인 감정이다) 체인점이 들어서고 봐주기 없는 연체료와 각종 쿠폰을 무기 삼아 북적거리면서부터 공간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장사엔 아예 관심이 없으신 듯 오전 일찍부터 친구들과 화투, 장기를 두다가 퇴근하셨고, 하시는 일이라곤 아주 가끔 오는 비디오 고객에게 약간 비싼 대여료를 받고 비디오를 빌려주거나 구식 오락기 5대로 출퇴근하는 동네 아이들의 잔돈을 바꿔주는 일인 듯했다.

전단지를 보고 나는 급히 가게로 갔다. 가게는 중고비디오 판매점처럼 바뀌어 있었고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곧 없어져버릴 공간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증발해버린 오락기 자리 앞에서 허탈하게 돌아서던 세 아이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슬퍼졌다. 몇달 전 내가 단편을 찍을 때 아저씨는 가게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공간도 나의 변변찮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어버린 거다. 아저씨께 찍은 영화의 복사본도 하나 드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가게에서 3만원어치의 비디오를 샀다. 내게도 처음으로 소장비디오가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항상 배경처럼 존재하던 낡은 공간의 유품은 이런 식으로 내게 영원히 머무르게 되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