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모종 심는 할머니의 흙 묻은 손과 발. 땅에 붙어 일하느라 굽은 할머니의 허리. 무심하게 꽃 핀 석류나무와 무궁화나무. 카메라 뒤 감독에게 수박을 건네는 할머니. 그리고 다시 자연의 소리. 내레이션도 없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는 자막조차 없다. 소성리의 풍경 사이로 할머니들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는 30분이 지나서야 이 영화가 할머니들의 생애사 구술 기록이 아님을 알려준다. 경찰의 호위 속에 미군 차량들이 성주로 들어온다. 그와 함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단체와 사드 찬성 단체들이 성주에 몰려와 서로에게 확성기를 들이댄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종북 빨갱이며, 다 죽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서북청년단의 막말은 할머니들의 가슴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까지 날카롭게 벤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았던 할머니들은 지금의 시국이 불안하기만 하다. “사드가 뭐신지 들어보니까네, 저짝에서 대포가 날라오만 여기서 받는 기라 카대.” 이토록 쉽게 사드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할머니들은 사드가 결코 평화에 가까운 단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나이 들어 아픈 몸 돌보기에도 벅찬 할머니들의 일상에 그렇게 ‘투쟁’이라는 단어가 끼어든다. 밀양 송전탑 싸움에 나선 할머니들의 곁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박배일 감독은 이번엔 소성리에 사는 금연·순분·의선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근현대사 60여년의 시간을 단번에 꿰는 마법을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