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재밌는 영화>와 같은 기획영화의 탄생 이면에 서 있던 김상오 PD(34)는 감독이 자칫 놓치기 쉬운 대중성의 측면을 끊임없이 자각시키는 것이 프로듀서의 중요한 역할이며, 이 시대의 관객이 어떤 영화를 요구하는가 하는 고민에서 PD의 역할은 시작된다며 긴 대화의 운을 뗐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영화판에서 PD가 하는 일이란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실무의 모든 것.
작가나 감독에 의해 미리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PD가 최근의 경향을 분석하여 시놉시스도 쓴다. 작품 기획이 끝나면 장르와의 궁합을 살펴 어떤 영화사와 함께 일할 것인지 결정한다. 호러물을 잘 만드는 영화사가 있고, 코미디물과 잘 맞는 영화사가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을 제작해온 좋은 영화사는 그런 의미에서 <재밌는 영화>의 적격 산실. 그리고나서 감독을 지목하는데 대개 전작의 분위기로 판단하며, 신인감독의 경우 더욱 엄밀하고 객관적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댄다. 장규성 감독이야 워낙 김상진 감독이 비기(秘技)를 전수하며 ‘아들’처럼 키운 사람이기에 별 고민없이 결정된 케이스.
감독이 정해지면, 감독의 스타일과 제작사가 원하는 방향, 대중의 요구 등을 일치시키는 것도 PD의 능력이다. 그 다음은 투자자 모집. 대개의 영화사는 하나에서 여러 개의 투자사에 줄을 대고 있지만, PD가 직접 나서서 기업이나 개인 투자자를 모색하기도 한다. 좋은 영화사는 시네마 서비스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어 김상오의 짐을 덜었다. 투자자 모집이 끝나면 배우와 스탭 캐스팅. 기껏 전달한 시나리오가 거부당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아예 시나리오가 배우 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럴 땐 PD가 나서서 소속 회사의 이름과 모든 인맥을 총동원한다. 대개 어느 영화사에서 흘러들어온 시나리오냐를 가려서 매니지먼트사에서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이번 <재밌는 영화>는 배우보다 스탭 캐스팅에 더 신경을 썼다. 코미디영화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야 한다는 김PD의 고집 때문. 촬영이 시작되면 하루에 몇천만원 단위의 제작비를 고스란히 까먹느냐, 예정된 일정과 예산에 촬영을 마치느냐가 PD의 재량에 좌지우지된다. 그 와중에서도 감독의 연출권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에 돌입하면 그야말로 몸은 녹초가 되지만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지는 시기. 믹싱, 편집, CG, 텔레시네, 현상을 거쳐 프린트가 나오면, 시사회 일정 잡고, 마케팅과 배급에도 관여한다. 개봉관이 잡히고 영화가 상영되면 비로소 그 무겁던 임무에서 면책되는 순간이라고.
“<선물>에 이어 <재밌는 영화>까지 일년에 한편씩 꼬박꼬박 프로듀싱하는 실로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자평하는 김상오는 현재 ‘진짜 재밌는 영화’ 시나리오를 한편 구상중이다. 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프로필
1969년생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영원한 제국>(94) 제작부
<내 안에 부는 바람>(97) 제작 총지휘
<질주>(98) 제작실장
<선물>(2001) PD
<재밌는 영화>(2002)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