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없앴다. 영리한 바보상자에게서 달아나고픈 마음을 품어왔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나는 텔레비전에 빠져들곤 했다. 탐사기획과 뉴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었다. 헌데 어느 날부턴가 그것들이 꼴보기 싫어졌다. 이명박의 계절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괜찮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괜찮은 목소리로 전해주던 세상의 희로애락이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농부를 고깃배에 태우는 식으로 기자와 PD를 쫓아내자 방송은 마치 사전의 뜻풀이를 시연하듯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다. 나팔수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이었다. 거짓 저널리즘이 침묵의 토양 위에서 날개를 폈다.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시청료가 그 후원금처럼 여겨졌다. 때마침 텔레비전이 고장나자 미련 없이 버렸다. 그것은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기도 했다.
산하를 난자한 4대강 사업과 비리로 얼룩진 자원외교, 정권연장을 위한 정보기관의 선거개입과 민간인사찰의 국면에서 방송저널리즘은 무슨 짓을 했는가. 뒤이은 박근혜의 계절에서 방송은 사악한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허수아비들의 활약은 세월호 참사 앞에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처럼 빛났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고 촛불의 파도가 광장에서 넘실대던 겨울밤, 나는 보았다. 매끈하게 빛나는 MBC 현장중계 차량에 쌓이던 분노의 손팻말을. 누군가는 가래침을 뱉었다. 기시감일까. 1980년 오월광주 시민들의 손에 불타던 MBC 사옥이 떠올랐다. 다른 시공간이지만, 같은 장면이었다.
그랬던 MBC가 돌아왔다! 고 한다. 사실일까. 고깃배를 타고 떠났던 농부들이 들녘으로 돌아왔다. 최승호 신임사장이 그중 한명이라는 점이 반갑기만 하다. MBC는 지난날의 애칭 ‘마봉춘’을 되찾을 수 있을까. 쓰라린 기억을 곱씹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리라. 그래서 제안하고 싶어졌다. 사장실 벽에 방송의 밝은 미래를 걸지 말고, 어둡고 치욕스런 과거를 걸라고. 불타는 MBC 사옥과 가래침 쌓인 중계차량이 눈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하라고. MBC의 미래는 결국 과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