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미세먼지는 어느새 서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와 더불어 서울은 세계에서 공기 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로 꼽힌다. 지난 반세기, 서울에서 가장 사악한 살인마는 평양이었다. 그 살인마는 눈에 가장 잘 띄는 동시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 신출귀몰한 괴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평양의 이념이 쥐도 새도 모르게 서울의 뇌로 스며들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배웠다. 서울은 언제나 평양을 고발하고, 평양과 경쟁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허파에서 혈관을 타고 뇌까지 침투하는 1급 발암물질, 초미세먼지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일은 큰돈이 드는 일이므로 서울에선 어려운 일이다. 돈을 만들고 쌓는 사업은 그 반대이므로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산을 좋아하던 나는 요즘 산을 잘 오르지 않는다. 더 많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건, 더 많은 먼지를 마셔야 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잠시 가라앉은 10월의 마지막 날 새벽, 아차산에 올랐다. 한강 너머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슈퍼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안보를 이유로 허가되지 않았으나, 돈을 이유로 허가받은 황금탑이었다. 3조8천억원을 들여 쌓은 555m는 단 한순간도 꺼져선 안 됐다. 2005년 10월의 마지막 날 새벽, 대동강 너머로 붉게 타오르던 평양의 주체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을 떠올린 건 왜일까. 둘은 닮아 있었다. 아니 같다.
이제 이 탑은 돈 자체이자, 평양에 맞서는 서울의 자존심이다. ‘평양이 핵탄두를 만들 때, 서울은 돈탄두를 만들었네.’ 머릿속에 별것 아닌 메모를 끼적이며 산에서 내려왔다. 핵과 돈의 충돌이 생성할 끔찍한 먼지에 대한 상상으로 내 마음은 서울 하늘처럼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