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자리를 뜨자 그 사이를 틈타 두 감독은 각각 자기 일에 열심이다. 김 감독은 사진기자에게 “<광복절 특사> 아시죠. 제 작품도 좀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홍보전을 펼치고, 장 감독은 휴대폰을 들고서 “뭐, <할리데이> 원곡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돼”라고 다소 언성을 높인다. 막간 5분이 지나고, 두 사람 다 “이제 됐죠?”라고 한마디. 바쁜 모양이다. 그러나 사제간의 허물없고 뼈있는 대화가 궁금한 이들은 “아니, 이제 시작인데요”라고 응수했다. 후반전은 그렇게 재개됐다.
김상진 >>> 지금이 비수기라 어떨지 모르지만 난 폭발적인 관객층을 모을 것 같아. 다시 보는 관객도 꽤 많을걸.
장규성 >>> 전 신기한 게 감독님의 바로 그런 긍정적인 반응이거든요. 한없이 유치하고 황당하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아, 그런데 잘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요?
김상진 >>> 그냥 감이지 뭐. 그걸 어떻게 따지냐. 다소 그런 코드들이 좀 있다는 거지.
장규성 >>> 자식, 잘 찍었네 하는 장면은 없어요?
김상진 >>>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네.
장규성 >>> 난 칭찬받고 싶은데….
김상진 >>>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장면보다는 슬쩍 집어넣은 장면들이 좋아. PC방에서 김수로와 김정은 대화나 총격전 중에 타임 걸고 작전 짜는 장면들.
장규성 >>> 죽인다는 거죠?
김상진 >>> 그래 죽는다. (웃음) 자체적인 아이디어로 웃기는 장면들인데, 난 그게 좀 더 많았어도 좋았다고 보는 거지. 근데 난 40계단 같은 경우는 정말 재미없었거든. 그냥 너무 길 뿐이야. 한 시퀀스 전체를 패러디하겠다는 건 좀 무리 아닐까. 그것도 단지 총이 없어서 결국 삶던 순대로 목졸라서 사람 죽인다는 것만으로 끌고가기에는 약하지. 바람 날리고, 비 뿌리느라 뺑이쳤지만, 관객 반응은 고생한 만큼 나오지는 않을 거야. ‘툭툭’치고 ‘슉슉’ 빠져야 하는데.
장규성 >>> 그럼 너무 복잡해지잖아요. 그래서 안 한 건데. 오히려 전 코미디영화를 패러디한 장면들이 힘들었어요. 그걸로 또 웃겨야 하는데 특히 <넘버.3>의 여관방 장면처럼 송강호가 워낙 잘하는 장면은 더이상 넘어서기가 어려운 거예0요. 그래서 찍어놓고 쓰지도 못했지.
김상진 >>> 후반부에도 그런 장면이 또 있어서 그래. 총 맞고 서태화가 전봇대에서 쓰러지면서 ‘고마해라, 마니 무따 아이가’ 하는 거. 룸살롱 장면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거잖아. 근데 다 알고 있는 장면이거든. 내 생각엔 그 지점에서 오히려 다른 장면이 치고 들어와야 한다는 거지. 아까 40계단 장면하고 연결해보면, 죽일 때 대꼬챙이로 찔러 죽이는 게 아니라 정말 오뎅을 많이 먹여서 죽일 수도 있고, 그럼 ‘마니 무타’가 자연스레 나오는 거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친구>로 빠지는 것이 되니까.
장규성 >>> 나보다 더하시네.
김상진 >>> 통으로 잘라와서 연결시킨 장면들이 본래 맛이 떨어져서 그래. 힘은 힘대로 들어가고. 물론 어차피 둘 수밖에 없는 악수일 수도 있지만. 너도 그런 것 느끼지?
장규성 >>> 나라고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 나도 중간에서 딴 길 새는 거 무지 좋아하는 놈인데.
김상진 >>> 패러디라는 장르가 원래 우리 식대로 놀 테니까 관객도 맘대로 즐겨보시라, 뭐 이런 거 아닌가. 그런데 아이디어만 재밌다고 던져놓으면 되는 게 아니거든. 우리 식 표현대로 앞에 리쥬를 쭉 깔아야지. 그러다 한순간에 확 틀고 꺾어야 맛이 나고. 그런데 이 영화도 초반에 상황을 많이 설정해놔서 끌고가다가 여러 번 비틀 수 있는데도 패러디 장면에만 욕심을 부리느라 그런 게 많이 빠진 것 같아.
장규성 >>> 근데 그러면 애초 이 영화의 기획의도랑 안 맞잖아요. ‘한국영화 패러디’라는 걸 무시 못했던 거지요. 그냥 내 식대로 밀고 가면 그냥 코미디영화일 뿐이고. 필요악이라는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했던 거니까.
김상진 >>> 이해는 돼. 전체적인 리듬이 크게 어긋나지도 않고. 다만 영화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템포가 느려보일 거야. 여기서 한번 더 웃겨도 되는데 하는 부분들도 조금씩 보이고. 물론 관객 반응은 나도 몰라. 다만 <쉬리>를 축으로 따라가는 스토리텔링을 다 알고 있는데다 또 각 장면들이 패러디한 원장면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지겨울 수도 있다는 거야. 근데 관객은 다 본 건 아닐 테니 우린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관객은 ‘저게 무슨 장면이지’ 할 수 있어. 패러디인지 모르면 웃을 수 없는 장면들도 좀 있고. 아무래도 개봉을 해놓고 결과론적으로 ‘이건 좀 빨랐구나, 늦었구나’ 감독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어.
장규성 >>> 감독님도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 때 그랬어요.
김상진 >>> 그렇지. 내가 너무 빨리 잘랐구나, 너무 늘였구나 하지. 근데 경우가 좀 다른 것 같아. 나야 내 스스로 템포가 좀 처진다 싶으면 불안해할 정도이긴 하지만 그나마 스토리텔링을 풀면서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근데 패러디영화는 아니야. 물론 궁금한 건 역시 관객 반응.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도 분명 있을 거야.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10분 지나면 같이 온 남녀가 ‘오빠, 나 저건 못 봤어. 저거 어디서 나왔지’ 막 그럴 거라고. 안 봐도 뻔해. 나보고 이거하라고 했으면 절대 안 하지. 너처럼 엮어낼 자신도 없고.
당신이 최고다, 그런 당신을 이기면 내가 최고다
장규성 >>> 최종 판단은 관객이 하겠지만, 처음과 달리 데뷔작을 잘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만날 이런 유의 영화만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김상진 >>>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는 것보단 낫지. 코미디에 무슨 애정이 있는 것처럼 해야 되잖아. 솔직히 멜로영화는 성질이 안 맞아서 못 찍겠어. 정말 못 찍겠어.
장규성 >>> 다른 장르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코미디를 풀면 되지 않나요. 찍다보면 장난기가 발동하니까, 난 다른 장르라 하더라도 이 장면 재밌겠다 싶으면 갈 것 같은데. 그래도 감독님 밑에서 배우면서 뭐가 대중적인 코드인지는 감을 좀 잡았으니까.
김상진 >>> 완죤히 서로 키워주기 분위기네.
장규성 >>> <신라의 달밤> 믹싱하는 데 가서도 낄낄대고 웃었을 정도로 관객으로서도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어떨 때는 부럽기도 했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감독님을 이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상업영화 감독이다 보니 흥행스코어가 기준일 테고. 사실 다음에라도 꼭 한번은 이기고 싶어요.
김상진 >>> 무섭네. 전부터 그런 놈인 줄 알았지만.
장규성 >>> 당신이 최고다. 근데 난 이기면 더 최고다 하는 거 있잖아요. 어쨌든 내 영화는 처음 봤으니까 선배로서 후한 평가를 해준 것 같기도 하고
김상진 >>> 그럼 박하게 평가할까?
장규성 >>> 아마 <재밌는 영화>도 마지막 장면의 대사나 설정을 두고서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것 같아. 남북 두 정상이 천황을 왕따시키는 장면 있잖아요. 나야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다만 그게 재밌어서 그런 건데.
김상진 >>> 그래도 김정은이 ‘니들이 잘한 게 뭐 있어’라며 일장연설하는 장면은 닭살이야. 너무 드러나니까.
장규성 >>> 느닷없기도 하지요. 나도 느껴요. 근데 그런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가자니 좀 휑해보이잖아.
김상진 >>> 오히려 패러디영화라는 장르를 고려하면, (일본 극우파 테러리스트가) 서태지로 변장해서 구찌 티셔츠를 입고 입국하는 장면 같은 게 좋아보이던데.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외쳐야 인정을 받았는데 이제 누가 교육 받으러 극장에 와. 화나지. 그런 ‘큰’소리는 이제 없어진 것 같다고. 아, 근데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왜 하고 있지. 어쨌든 쌈마이 문화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것 같아. 문화적인 현상의 배후를 샅샅이 파헤치는 것보다 슬쩍 건드리고, 쓱 지나가는 게 훨씬 세련돼보이는 시대라고. 그래야 보는 입장에서도 더 유쾌하고. DJ아저씨를 그려놓는 노골적인 정치면의 만평보다 닭이야기나 광수생각이 더 먹히는 것과 같은 이치야.
장규성 >>> 마지막 편집에서 뺐다가 다시 붙였을 만큼 고민했어요. 감독님도 그런 것 있잖아요.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김상진 >>> 나도 있지. <돈을 갖고 튀어라> 때. 신문 사회면에 정치권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 통렬한 일격을 가하는 영화라고 통기사가 떴으니. 이건 아니다 싶었지. 내가 누굴 죽이지도 않았는데 신문 사회면이나 시사 주간지에서 얼굴 나는 게 말이나 돼? 아까 내 말은 자기 스스로 통렬한 일침을 가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어하는 영화와는 달라질 것이라는 거야. 무심한 듯 슬쩍 가야지. 물론 무게있게 한마디 해야 평점이나 별을 많이 받긴 하지만.
평론가와 기자들이여, 순수해져랏!
장규성 >>> 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도 내가 조감독 시절 보면 별에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굉장히 민감해 보여요. ‘흥행만 잘되면 돼’라고 해놓고서도 별 1개 반, 2개 반 받으면 은근히 다음 작품에서 부담 가졌잖아요.
김상진 >>> (웃음) 임마, 너도 그런 거 생겨. 넌 특히 패러디 장르로 시작했으니까. 천출이잖아.
장규성 >>> 평론쪽에서는 아주 박한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거든요.
김상진 >>> 물론이야. (웃음) 우리나라에서 평론가와 기자만큼 감각이 느리고 자기 개방을 안 하는 사람들이 없어. 순수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사회적인 메시지를 너무 강요받고 싶어해. ‘제발 날 좀 강요해 줘’라고. 근데 요즘 10대는 그런 거 보면 짜증내. 사실 우리나라에 패러디 문화라는 게 있어. 고작해야 방송에서 광고 패러디 한 코미디가 전부잖아. 그런데 이걸 영화로 만들었어. 6천원 받겠다고. 아, 요즘 7천원이냐? 남들이 만들어놓은 것 위에 얹혀간다고 하거나 저급하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는데 중요한 건 관객이 유쾌해야 한다는 거야. ‘오빠, 저거 너무 재밌대. 김정은이 죽인대’를 원하는 거지, 일부 소수계층을 상대로 한 장사가 아니거든. 7천원에 인생의 감흥을 얻으려는 분들은 극장 앞에서 돌려보내야 해. 제 영화를 보시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시려는 분들은 서점에 가서 <노인과 바다>를 읽으십시요, 그래야 돼. 그게 대중영화의 가치 아니야.
장규성 >>> 그렇죠. 아. 그러고보니 조감독 시절 많이 배웠네. 감독님 장점이라는 게 뽑아먹을 것은 다 뽑아먹는다는 거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을 최대한 유쾌하게 끌고 가야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김상진 >>> 난 너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 패러디라는 게 어렵고 용기있는 결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 것을 다 보여준 것은 아니니까. 온전히 네 것만으로 갔을 때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중요한 건 사실 첫번째 작품보다 두번째가 어렵다는 거야. 처음이야 도와준 사람들도 많잖아. 기대에 대한 부담만 덜면 되니까. 근데 이 영화는 분명 성공할 테니까 두번째 작품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 거야. 자신이 판단하는 만족도의 문제도 그렇고 고민이 많아질 거라는 거지. 나도 <광복절 특사> 시나리오 오래 끌었잖아. 더 잘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 때문에.
장규성>>> 자기 새끼가 만들었는데 나중에 쪽팔려서 죽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스트레스는 있었어요.
김상진 >>> 이제는 개봉을 즐기는 시간만 남은 거야. 고문도 끝났고, 이제는 네 손을 떠난 거니까. 술자리도 가고, ‘난 왕이다’ 하는 분위기로 가면서 실컷 놀아. 나처럼 영화 떨어질 때까지 기분내는 건 좀 그렇지만, 맘껏 즐길 필요는 있어. 그 시간 지나면 다음 작품 언제 들어가야 하나 조바심이 들 테니까. 어차피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맘 느긋하게 먹고 차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게 다음 작품에도 좋아.
장규성 >>> 못마땅한 게 많지만, 그래도 오야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맘이 놓이네.
김상진 >>> 이제 된 것 같은데. 끝! 정리 이영진 [email protected]·백은하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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