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섬이었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쉼 없이 이어진 폭격과 기총 사격 탓이었다. 반세기를 그랬으니 남아날 게 없는 건 당연했다.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농섬. ‘농’이라는 이름이, 잘못됐다는 뜻의 영어단어 ‘Wrong’을 연상시킨다. 오산공군기지에서 낮게 날아오른 미7공군 소속 전투기들은 매향리 육상사격장의 목표물에 기총 사격을 한 뒤 바다를 건너 농섬에 폭탄을 투하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훈련을 이어왔다. 인근에 주민들이 살고 있어 실전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주민들은 불안과 우울증,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가축들은 유산하기 일쑤였다. 미공군 관할이지만, 운영과 관리는 세계적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맡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온갖 신무기가 실험되었다고 주장했다.
2000년 5월, 잘못된 폭탄 투하로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가옥이 파손되는 사고가 났다. 폭격장 폐쇄운동은 더이상 참고 살 수 없다는 외마디 비명 같은 것이었다. 그 외침을 틀어막은 건 한국 정부, 한국 경찰이었다. 많은 주민과 연대시민들이 다치고 연행되고 구속되었다. 끈질긴 저항운동 끝에 2005년 8월, 매향리 폭격장은 폐쇄됐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미군은 한국 정부에 훈련 소요량을 채우기 위한 대안을 요구했다. 군산 앞바다 ‘직도’였다. 그곳은 우리가 다가가기 힘든 곳,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섬이기에 지금 시대에 더 적합했을 것이다. 농섬엔 이제 폭음이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롱 아일랜드’는 고장난 섬이 되어 온몸으로 폭격을 견디고 있다.
왜 그랬을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른바 ‘사드’ 강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성주에서 경찰이 가로막은 저 너머 숲을 바라보다가 매향리가 떠올랐다. 내 눈으로 보았던 과거의 농섬, 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상상할 수 있는 현재의 직도, 내가 볼 수도 상상하기도 힘겨운 미래의 성주가 머릿속에 뒤섞여 어지러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땅의 주권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