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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200% 부족해
2001-03-17

숏컷 - 김봉석 칼럼

요즘에도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써내는 통신문 같은 것이 있었다. 가족관계부터 잡다한 것들을 적어냈는데,

그 중에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항목도 있었다. 그 항목에서 나는 늘 걸렸다. 생각해봐도 별로 쓸 사람이 없었다. 소위 위인전이라고 나온

책들을 죄다 읽었어도, 거의 와닿지 않았다. 중학교 땐가, 작정을 하고 집에 있는 위인전을 죽 훑어봤다. 어딘가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한참 뒤지다가, 결국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알 것도 같다. 그 위인전들은,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보고 배워라”라는 목적으로 쓴 것들이다. 이런 게 바로 이

사회가 원하는 덕목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과 품성이다, 라는 ‘의도’를 가지고 재단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개 정치인이나 전쟁영웅, 위대한 발명가 등으로 국한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의 ‘남다른’ 성장기와 일화를 읽다보면, 어딘가

위화감이 든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군. 하지만 내 삶과는 다른 걸, 이란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일화’가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예를 들어 트로이를 발견했다는 슐레이만. 슐레이만은 어린 시절 트로이 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결국 발굴에 나서 신화 속의 도시 트로이를 발굴했다, 고 한다. 그의 일화는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 라는 식으로 흔히 이야기된다. 하지만 실제로 슐레이만은 사기꾼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발굴에 뛰어든 것도,

그게 좋은 사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발굴 과정에서도 타인의 노력을 가로챈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조작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건 ‘위인전’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까.

국내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한때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도 그렇다. 그 ‘자서전’에는 당시 사회가 강요했던

‘덕목’들이 수없이 널려 있지만 지금 도피중인 김우중의 온갖 ‘범죄’에 대한 사실은 단 한마디도 실려 있지 않다. 그냥 자랑하고 싶은 것,

혹은 강요하고 싶은 것들만 죽 늘어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그런 류의 자서전이나 에세이 같은 것들이 엄청나게 나오고 또 팔린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화자찬의 글이라도, 또는 아부하는 글들도 때로는 필요하다. 하지만 균형이 필요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부족한 것의 하나는 ‘논픽션’이 아닐까. 누군가의 생애를 쓰더라도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가능한 한 그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려는 전기작가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세계의 여러 부분들을 파헤치고 발로 뛰어서 르포를 쓰는 로포 작가들. <올리버

스톤>이나 <고야> 같은 전기들, 범죄세계부터 정치권의 음모 등 다양한 영역을 파헤친 외국의 르포들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도

작가는 수없이 많은데, 왜 라이터(writer)는 별로 없는 것일까. 단지 게으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공정함을, 또는 다양한

시각을 원치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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