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이 재미없다는 원성이 높다. 말랑말랑한 이야기 좀 써라, ‘지사의 풍모는 충분히 유지되고 있으니’ 생업이야기로 돌아가라, 고군분투하는 프로듀서의 애환 같은, 뭐 그런 진한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를 좀 써라…는 등 주문이 많다. 아무개 기자와 인터넷 메신저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신경질이 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내가 무슨 개그작가냐, 재미없다고 타박하게….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널려 있고, 재미있는 글이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그 대열에 끼어드냐고…. 격조나 안면 때문에 <씨네21> 내부에서 쓰기 어려운 이야기도 소화할 수 있으니 구색 맞추기로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니냐…. 내 입장에서도 영화산업이 어쩌고, 정책이 어떻다느니, 촌지 받는 기자가 어쨌다느니…, 하는 둔탁한 주제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훨씬 경쟁력 있는 거다…. 게다가 괜히 어설프게 폼 잡는 척하다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쓰는 신현준 선배 같은 사람과 비교라도 되는 날에는, 인문적 소양이나 뭘로 보나 망신 당하기 십상일 텐데, 끝까지 뭔가 옳은 소리 하는 척하면서 쪽 팔리지 않는 게 상책 아니냐…”라고… 전화기만 들고(걸지는 않고) 혼잣말로 위안 삼고 말았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면 지사가 아니지…. 좀더 밀고 가보기로 한다.
내가 지사로 낙인 찍힌 데는 이유가 있다. 입에 거품 물고 설치거나 격문을 써서가 아니라 호·불호가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분명한 내 입장을 밝히는 편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지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분명한 견해를 드러낸다. 다만 소양이 얕아 진심과 본뜻을 맵시있는 글로 잘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약간의 거부감을 산다는 것이 문제지만.
나는 지난해 한 영화제에서 주는 상을 당당하게 거부했던 평론가 박평식씨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평소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 과격하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는 화살을 피할 수 없고, 한국 땅에서는 마치 사회 부적응자인 양 폄하되기 십상이라는 데에 부아가 난다.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카르텔을 추종하는 글과 양비론이다. ‘중용’을 비껴난 카르텔은 담합이고, 이런 카르텔과 양비론의 본질은 비겁과 기회주의라고 생각한다. 카르텔의 폐해는 영화 관련 매체나 기사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거의 천편일률적이라는 건 쉽게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이른바 양비론을 경멸한다. 가까운 예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보자. 한쪽에서 지엽말단적인 인식공격이나 헐뜯기를 시도하면 언론에서는 ‘검증’이라고 받아쓰고, 이에 대해 해명을 하면 ‘비방전’, ‘이전투구’ 따위로 매도해버린다. 양쪽의 입장을 똑같이 전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둘러대겠지만, 왜곡된 주장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규명해서 알려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것이다. 언론의 검증이,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져 밝히는 게 아니라 비방과 험담을 얼마나 끈기있게 참고 버티는지 ‘맷집’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몰고가는 것만 봐도, 양비론의 추악한 본질은 입증되는 셈이다.
여하튼, 나는 앞으로도 ‘지사적 글 쓰기’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이 칼럼이 재미없더라도 참고 읽어주든가, 아니면 필자를 바꾸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