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이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활동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개월 전부터 눈에 띄게 활동이 늘었다는 인상이다. <힙합의 민족>이나 <리바운드> 같은 방송 출연 덕분일 것이다. 나는 요즘 주석의 초기 앨범들을 다시 듣고 있다. 다시 들어보니 당시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고로 주석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이제 와서 혹은 이제야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주석은 한국에서 여러 가지를 ‘처음 시도’하거나 꼭 처음이 아니더라도 ‘퀄리티 있게 처음으로’ 보여준 뮤지션이었다고.
무엇보다 모든 게 ‘straight from 힙합!’이었다. 사운드, 작법, 태도, 주제, 구성, 아트워크부터 비유 하나, 관용어구 하나까지 모든 것에서 주석이 힙합이라는 장르/문화의 열렬한 팬이었음이 너무나 잘 느껴진다. 2000년 전후는 무언가 진지하고 거창한 랩 가사들이 만연한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당시 시대의 기운 같기도 하고 ‘힙합 정신’이라는 미국의 모호한 무언가를 막 받아들여 나름대로 구체화한 한국 힙합의 현주소였던 것 같은데, 그 중심에 바로 주석이 있었다.
<開戰 2002>는 주석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힙합 고유의 작법인 샘플링을 멋지게 활용했고, 디제잉으로 가사를 만드는 힙합 특유의 ‘리리컬 스크래치’도 노래가 흐르는 내내 반복된다. 그리고 비트 위에서 주석은 쇳소리를 내며 남성성을 뽐낸다. 일단 제목부터 이미 ‘전쟁을 시작한다’가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힙합은 이런 거야! 힙합은 이런 거지! 이런 건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아. 지금도 난 듣고 있다고! 2002년은 월드컵이 아니라 주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