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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 -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그림자들의 섬>(2014)의 김정근 감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통화 중이다. 한참 만에 돌아와 가쁜 숨을 고르던 김정근 감독은 “조직을 해야 한다!”며 함박 웃는다. 그의 통화 상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다. 인터뷰 다음날 진행될 <그림자들의 섬> VIP 시사회에 초대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참이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현장을 통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분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다.” 영화는 대한조선공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의 30년 노동조합사를 되짚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비롯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 각자의 노동의 기억을 소환한다. 김정근 감독은 사쪽의 노동 탄압에 맞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응원한 희망버스 이야기 <버스를 타라>(2012) 이후에도 끈질기게 그곳의 노동자들을 기록했다. 2014년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었던 <그림자들의 섬>이 드디어 8월25일 관객과 만난다.

-‘조직’은 잘되고 있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데 이분들이 웬만해서는 움직이는 분들이 아니다. 영화 보러 오시라고 떼쓰고 ‘협박하고’ 있다. (웃음) 언론 시사에 김진숙 지도위원을 모시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시기도 하고. ‘그때의 투쟁의 현장을 재생해서 다시 본다는 게 괴롭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래도 시사 끝나고 문자를 보내셨더라. ‘고마워요, 고생했어요’라고.

-2010년 10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햇수로 5년이 걸렸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이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고 했다.

=2003년 무렵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근데 내가 게을러서 그걸 안 했다. 그 말이 나오고 일주일 뒤에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던 김주익 열사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과 문상, 추모제에 다녀오면서 인이 박였다. 좀더 일찍 뭔가를 했다면 사태가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 현장을 보면서 한진중공업 노동자에게도 일어날 일 같더라. 노동 현장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인터뷰로 서사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혹자는 인터뷰를 두고 너무 쉬운 선택 아니냐, 미시사적 차원의 인터뷰들을 교직해 노동조합의 역사를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 영상으로만 진행했을 때의 한계점이 더 명확했다. 촬영 초짜라 그런지 현장에서는 뭔가 일이 터졌다 싶으면 그쪽만 찍게 되더라. 무엇보다도 제18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형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같이 소주에 라면을 먹었다. 왜 한진 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를 들어봐야 했다.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환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성호 형님은 해고 노동자로서의 경험과 노조의 긴 역사를 말해줄 수 있는 분들이다. 인터뷰이의 연령대를 다양하게 잡으려 했다. 자기 각성으로 노조 활동을 이어온 분, 활동의 전면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일해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조선소의 거친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 노조원들을 촬영한다는 게 처음에는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엄청 들이대고 치대면서 노동자들과 친해졌다. 노조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땐 출입 자체가 힘들었다. 그땐 금속 노조원들의 조끼를 빌려 입고 조합원인 양하고는 출입했다. 출근길에 같이 들어가 밥도 같이 먹고 퇴근도 같이 하고.

-촬영을 시작하고 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애초의 구상이나 기획 의도와 달라진 부분이 있을 듯한데.

=촬영 전에는 노동 현장, 노동조합 하면 막연하게 날이 선, 엄격한 규율을 가진 곳일 거라 생각됐다. 그래서 가장 전위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조합의 모습과 그 안의 갈등을 다루고 싶었다. 근데 막상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보니 그들의 일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의 방향으로 가는 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실제 한진중공업 현장 사진들을 여럿 합성한 듯한 영상 구성에 눈이 간다.

=다행히 노조에 앨범 30여개 분량의 사진집이 있었다. 포토숍으로 사진들을 오려서 한진중공업 정문이나 길목 등의 배경 화면과 합성하고 카메라로 훑는 듯한 효과를 줬다. 마치 관객이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이길, 이렇게라도 당시의 현장을 체험하길 바랐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썼다.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고 현장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은유와 풍자로도 읽힌다.

=고 김주익 열사가 좋아한 곡이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다. 가사와 눈앞에 펼쳐지는 화면이 묘하게 어긋나는 듯 맞아떨어졌다. 사랑 노래가 흐르는데 노동자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니. 윤영배의 <위험한 세계>도 가사가 주는 뉘앙스가 좋아 적극적으로 썼다.

-공업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인쇄소, 신발 공장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선반 만들기, 전기 작업 등을 실습하며 자조했다. 내 인생의 다음 행로에 별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하면서 <전태일 평전>을 읽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등지고 나온 학교, 그곳에서의 배움이 모든 노동의 기본을 익히는 것임을 알았다. 지금도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것에 경외가 있다. <그림자들의 섬>을 공고 학생들도 꼭 봤음 좋겠다. 이들이 가야 할 노동의 현장이 영화 속 30년 전의 노동 현장보다 더 열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선택지가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조원뿐 아니라 조선소 노동의 현실과 사내 하청 노동의 문제까지도 말하게 한다.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면 이 영화가 해야 할 몫은 다한 것 같다. 영화의 만듦새를 평가받는 것 이상으로 영화 속 이야기와 현재의 노동 상황을 자리 바꿈해 이야기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인터뷰이로 나서준 분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부터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를 찍고 있다.

=부산지하철 기관사분이 자살하셨다. 부산지하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하는 현장에서의 죽음인데도 사쪽은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회사가 경영과 안전관리를 잘못했는데 어째서 사고가 나면 노동자가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나. 누군가가 해고되고 죽어나가도 ‘그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애써 가슴 아파하지 않는 자기방어, 정신 승리가 허물어질 필요가 있다.

-<그림자들의 섬>은 노동자들이 돌아가고 싶은 한때를 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기쁨의 순간 등을 꼽는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이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조선소 용접공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니 사쪽과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과 자신의 자리를 한번쯤 바꿔서 생각해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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