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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향 감독, <집으로...>가기까지 (2)
2002-03-29

영화와 할머니와 함께한 백일 동거 이야기

대사 하고나서, “…이러라고?”

할머니를 자연과 등치로 놓고 산처럼 크고 흔들림 없는 할머니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이정향 감독의 목표는 어린이의 그림처럼 단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연스러움을 위해 기울여야했던 인위적인 노력은 끝이 없었다. 춘희를 미술관에, 철수를 동물원에 빗댄 것처럼, 할머니는 자연과 같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복잡한 은유나 상징의 필터없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이정향 감독은, 머릿속에 그린 ‘자연’의 이미지를 에누리없이 구현하는 작업 하나하나에 철저히 굴었다. 할머니의 생활 터전을 옮기며 촬영소에 세트를 짓는 대신 지통마 마을에 실내장면을 위한 세트를 지음으로써 방음의 난점을 무릅썼고 소품팀에는 황학동 벼룩시장을 뒤질 게 아니라 지통마 마을 주민들이 직접 쓰는 손때 묻은 옛 물건을 새 것과 바꾸어 빌려오도록 부탁해, 바가지 하나도 이미 플라스틱 제품을 쓰고 있는 마을 실상에 당황한 소품팀의 한숨을 자아냈다. 심지어 손녀 결혼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선 할머니는 도시 빛깔이 묻어 오실까 염려하는 감독 덕에 일정을 재촉해야 했다. 촬영기간 내내 새벽밥을 지어 할머니와 아침을 함께 먹으며 할머니에게 피부처럼 살가운 존재가 된 분장팀들은 매일 1시간이 넘게 할머니께 검버섯을 피우고 주름을 새겨 ‘<고질라> 분장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에 견주면 통제가 느슨한 프로덕션이었지만, 이정향 감독이 <집으로…>에서 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무질서가 자아내는 다큐멘터리적 박력이 아니라, 진실이기에 그녀가 들려주고 싶은 픽션을 가장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 ‘우호적인’ 자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주변의 우려를 물리친 감독의 비전문 배우 현지 캐스팅 전략은 마을 주민들로 채워진 버스장면과 정류장장면에서 빛을 발했다. “그냥 사운드를 따려고 ‘웅성웅성하세요’ 했는데 10분이고 20분이고 너무나 재미나게 이야기들을 나누시는 거예요. 할말이 많으니까. 서울 엑스트라 조합에서 내려온 생면 부지의 연기자들이었다면 정말 ‘웅성웅성’했겠죠.” 조연으로는 가장 대사가 많았던 가겟집 할머니로 분한 이동지월 할머니도 처음에는 대사 말끝마다 꼬박꼬박 “…이러라고?”를 덧붙여 스탭들 속을 까맣게 태웠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롱테이크를 탈없이 소화했다. 마을의 절대 인구가 너무 적어 수를 채우기 어려웠던 점, 휴대폰 사용자가 없어 막상 촬영시간에 사라지면 이리저리 찾으러 다녀야 한다는 점이 수고스러웠지만, 이정향 감독은 결국 지통마에 ‘연기 마을’이라는 찬탄어린 별칭을 붙이고야 말았다. 땅에 떨어진 감 하나도 함부로 손대지 않고 하루에 몇번을 봐도 인사를 건너뛰지 않으며 “주민들을 연기자로 모시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선 다음”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행동한 스탭들의 진심이 성취의 밑거름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어떤 감독보다 연기에 대해 냉혹하다는 본인의 고백처럼 배우의 연기를 말단의 디테일까지 머릿속에서 세필로 스케치해 놓고 촬영해 들어가는 이정향 감독에게, 스스로 실연(實演)을 해보이며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하는 촬영은 쉽지는 않아도 사실 ‘속 편한’ 작업이었다. 예컨대 상우가 까막눈 할머니에게 “보고 싶다”, “아프다”를 가르치는 장면 촬영현장에서 연기 연출은 이런 식이었다. “할머니, 상우가 여기까지 얘기하면 잘 안 되네 하는 식으로 머리를 한번 긁으세요. 그리고 써보려고 노력하세요. 승호는 할머니가 요 글자를 쓰는 순간에 ‘에이 참, 말도 못하는데 그것도 못하면 어떡해?’라고 말해. 그러고나서 상우가 울면, 할머니도 슬프면 우시고 안 슬퍼도 우는 시늉을 하세요. 내가 이렇게 계속 울어도 되나 싶어서 뒤돌아보거나, 이 정도면 됐냐고 묻지 마시고 울고 싶은 만큼 계속 우시거나 가만히 계세요. 상우 눈물 닦아주거나 하지는 마시고요.” 이즈음 자존심 강한 베테랑 배우가 다 된 김을분 할머니는 훌륭한 연기로 승호의 시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집으로…>의 가장 심술궂은 출연진은 날씨와 동물들. 산자락에 안긴 마을의 날씨는 스탭들 마음에 하루에도 열두번씩 햇살과 비를 번갈아 뿌렸고, 똑똑한가 싶으면 노쇠하고 잘 뛴다 싶으면 말을 안 듣고 잘생겼다 싶으면 손에 잡혀주질 않아 골치를 썩였던 강아지와 소, 벌레들은, 제작진 사이에서 이정향 감독이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제목을 달면서도 동물 한 마리 제대로 출연시켜주지 않은 전작에 대한 복수가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오게 했다.

“너 지금 어디 가는지 아니?”

어느 틈엔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가을 햇살이 들어서고 있었다. 여름 내내 주책없이 무성해진 길섶이 눈에 쏙 들지 않아 불만이었던 이정향 감독은 마을이 조금씩 초록을 벗고 할머니집 앞길이 호젓한 기운을 되찾으면서 안심이 됐다. 하지만 고쳐잡은 데드라인인 10월 말이 성큼성큼 다가들자 감독은 나날이 분주해졌고 외로워졌다. 밤새 동료들에게만 말을 남기고 서울로 가버린 스탭들의 난 자리가 보이는 쓸쓸한 아침들도 있었다. “분장, 의상팀이 네명이라 우리끼리 핑클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S.E.S가 되더니 또 듀엣이 되더라고요.” (웃음) 이정향 감독은 떠난 사람들을 찾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힘들어서 간 친구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힘들 텐데 설득할 말이 없었고 감독이 싫어서 떠난 친구들에겐 앞으로 잘해준다는 약속을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눈을 뜨면 기력이 없어 아침에 마실 우유 뚜껑을 저녁에 열어놓고 잠들 만큼 탈진했던 그 무렵, 이정향 감독은 “그래도 사람이 먼저인데…”라고 반성하면서도 영화를 궤도대로 끌고가는 일 외의 다른 무엇에도 기울일 에너지를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모두가 같은 영화를 꿈꾼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다들 각기 다른 청사진을 갖고 있어요. 다만 감독의 그것만이 모니터에 나오니까 스탭들은 감독 혼자 딴 길을 가고 있다고 여기게 되지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고 온갖 이야기가 배를 흔들 때 키를 끝까지 붙들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감독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탭 모두의 귀염둥이였던 승호도 엄한 ‘감독 누나’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헌팅 장소를 못 찾고 헤매다 산을 내려오던 이정향 감독은 뒤따라오고 있는 승호를 발견했다. “승호야, 너 지금 어디 가는지 아니?” “감독님 따라가는 거예요.” 이 아이가 그래도 나를 믿는구나.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는데도 나를 따라오고 있구나. 이정향 감독은 내려오는 길에 앞장서서 타박타박 걸어 내려가던 승호의 뒷모습을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

11월이 오던 날, <집으로…>의 촬영이 끝났다. 술잔과 눈물과 축수가 오간 이별의 인사도 끝났다. 휴대폰의 단축번호까지 지우고 촬영중에 안부 전화가 오면 “나, 지금 네 생각 조금도 안 나”라며 전화를 끊곤 했던 이정향 감독은 다시 돌아온 어두운 서울 거리에서 가만히 생각했다. 영화를 다 마쳤는데 자랑할 사람이 없구나. 결국 전화를 건 미국 사는 친구는 그녀가 영화를 찍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순조로운 후반작업이 끝나고 뽑아낸 프린트를 시사하던 크리스마스 이브. 영화 인생에서 언젠가 긍지를 갖고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을 빚어내는 것밖에 스탭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곤 했던 이정향 감독은 첫관객인 스탭들의 표정에서 엷은 위안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자시사회. 마을에 붙은 초청 포스터를 보고 옷은 뭘 입나 도시락은 싸야 하나 들썩였던 지통마 어른들은 “이리 고생하는데 꼭 잘되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영화가 어찌 되었나 확인하러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고 짧게는 20년 만에 길게는 평생 처음 마주한 스크린에 떠오른 피붙이 같은 고향 풍경과 이웃의 담벼락, 동네 친구들의 모습에 미소지었다.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시는 김을분 할머니의 모습에 갑작스레 아득해진 이정향 감독은, 할머니를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말았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닮은 모습을 김 할머니에게서 가끔 보냐고 이정향 감독에게 묻는 것은 우문이다. “그건 아니에요. 이분이 바로 우리 외할머니라고 생각하니까. 같은 사람을 비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 그녀에게 “작년처럼 내 평생 행복했던 해가 없다”는 할머니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이었다.

목적지만 또박또박 적은 제목처럼

2002년 3월19일 오후 인사동 찻집. 영화로 먼저 안부를 확인했던 이정향 감독을 11개월 만에 재회했다. 약속 장소로 가기 전 복습 삼아 읽은 <집으로…>의 시나리오는 혹시 완성된 영화를 보고 적어 내린 메모가 아닐까 싶을 만큼 영화의 체취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었다. 목적지만 또박또박 적은 영화의 제목처럼 이정향 감독은 자신이 어디로 갈지 처음부터 알았고 적어도 길을 잃지 않았던 거다.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감동도 잘하고 화도 잘 내는 이정향 감독은 약간 속상한 얼굴로 나타났다. <집으로…>를 단체 관람해 마땅한 교훈적인 영화로 규정한 어떤 사람들 때문에. 결코 교훈 같은 걸 주려고 만든 게 아닌데, 그저 <미술관 옆 동물원>과 똑같이 “나는 이런 세상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이라고 묻고 싶어 만든 영화인데. 이정향 감독은 <집으로…>가 비록 영화 만들기 작업에 관한 것일지라도 교훈은 품고 있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도전을 한다는 의식은 별로 없었어요.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 이야기는 내겐 논픽션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구입니다. 그래서 그 픽션의 캐릭터를 가장 설득력 있게 연기할 배우를 찾았을 뿐입니다. 연기 욕심이 많았거든요.” 일년 전과 다름없이 우둔한 기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잊었던 이런 눈짓이, 이런 손짓이 영화에 있었노라고 발랄하게 우리를 흔들어 깨운 목소리는 아마 그 말줄임표 속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라고. 글 김혜리 [email protected]·사진 이혜정 [email protected]사진제공 튜브픽처스·장소협찬 인사동 ‘아빠 어렸을 적에’ ▶ 이정향 감독, <집으로...>가기까지 (1)

▶ 이정향 감독, <집으로...>가기까지 (2)▶ 이정향 감독이 김을분 할머니께

▶ <집으로…>에서 배우 된 지통마 마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