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선수를 꿈꾸다 발레리노가 된 영국 소년의 이야기 때문일까. 태권도 주니어 선수로 활약하다 불현듯 무용가의 길을 가게 된 김성일(40)의 사연은 계속해서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했다. 너무나 유명해져 감히 예전의 초라한 빌리를 떠올리기 힘들었던 영화의 마지막처럼 김성일의 40대는 더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화려해보였다.
삼성 마이젯 광고에서 전지현이 보여준 섹시춤, 손지창의 세탁기 CF, 하이트 맥주의 원빈 안무 등 연예계의 톱스타들과 작업하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각종 뮤지컬에 출연, 안무 지도하는 한편, <춘향전> <봉이 김선달>(누나 김성령씨와 함께 출연) 등 마당놀이와 악극에도 도전해온 그의 이력에서 도무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분야를 찾기가 힘들 정도. 무엇보다 그는 현재 MBC예술단 무용단장, 성균관대 교수, 사설 댄스 아카데미(‘SMS’) 강사, 극단 ‘미추’의 상임 안무가, 서울 국악예고 강사, 마지막으로 월드컵 개막식 공연 안무자 등 헤아릴 수 없는 직함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한 영화와 뒤늦게 조우했다.그가 추는 춤의 장르는 한정돼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의 장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종목은 재즈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살피다보면 재즈를 만나는 과정이 꽤 드라마틱하다. 그가 처음 무용이란 걸 접하게 된 것은 예고에 들어가서도 조금 뒤의 일. 원래 성악 전공이었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과 선생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스카우트됐다. 그땐 그저 예쁜 여자애들이 한복 입고 무용하는 모습이 좋아 얼결에 따라 들어갔단다. 한국무용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대학에서의 전공은 현대무용이었고, 그때부터 서서히 대중 무용의 길에 가까워졌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MBC무용단의 안무자 공채가 있었고, 그의 이력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미숙, 김원희, 김민, 김현수. 네명의 ‘시스터즈’에게 춤을 가르치는 작업은 고도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과정. 무려 7개월간 매일 5∼6시간의 연습이 이어지는 동안, 배우가 오지 않아 묵묵히 혼자서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제일 힘들고 서운했다. 그러나 목석 같던, 빳빳한 판때기 같던 그녀들이 변해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고. 몸매가 시원시원한 김원희와 김민은 어떤 춤을 추어도 폼이 나서 가르치는 재미를 더했고, 이미숙과 김현수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쁨을 안겨주었단다. 이미숙의 막춤과 김원희의 로큰롤, 김현수의 라틴댄스, 김민의 디스코는 오는 4월 말에, 김성일의 활약상은 오는 6월, 화려한 월드컵 개막식 현장에서 확인 가능. 글 심지현 [email protected]
프로필
1962년생
경희대 무용과 졸업
뉴욕 브로드웨이댄스센터 연수
전 MBC예술단 수석 안무자
현 MBC예술단 무용단장
성균관대 뮤지컬과 강사
극단 ‘미추’ 상임 안무자
SMS댄스아카데미 강사 및 공동 운영
<울랄라 씨스터즈>(2002) 안무 지도
현재 뮤지컬 <더 리허설> <겜블러> 공연(준비)중
2002 월드컵 개막식 공연 안무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