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수상 발표는 5월16일이다). 소설이 처음 나온 것은 2004년이었고 나는 이 소설을 대학 4학년 때 읽었는데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으로 이어지는 연작소설의 내용이 너무 우울하고,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 커서 한동안 한강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암담한 미래 때문에 안 그래도 우울한데, 한강 소설은 답답함만 더해줬다. 그로부터 한동안 한강은 ‘남들은 좋다는데 내 취향은 아닌 작가’였다. 갑자기 채식을 시작한 여자, 유독 육식을 좋아하는 가족은 억지로 그녀 입을 벌려 고기를 먹이려 하고 여자는 식사자리에서 손목을 그어버린다. 붉은 피가 흰 접시에 쏟아져 내리는 이미지. 뛰다 죽은 개의 살이 부드럽다며 오토바이에 개줄을 달아 동네를 몇바퀴나 돌게 한 아버지는 그 개를 잡아 아홉살의 그녀에게 먹였더랬다. 개가 죽어가는 처참한 인상이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에 침잠해있었나 보다. 결혼 후 악몽에 시달리던 여자는 모든 육음식을 거부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깨끗한 개인주의자로 살기를 원했던 여자는 병든 사람 취급을 받는다. 연한 맥주를 입안에 오물거리며 문장을 곱씹어 봤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결국 그런 곳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까다롭고 유난하고 피곤한 선택들로, 그러나 자신으로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유일한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한강,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중에서)이 존중받는 삶. 그것 말고 더 나은 것은 없지 않겠느냐고.
술을 부르는 문장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