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내게 ‘언젠가 읽긴 읽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손이 안 가는 책’이었다. 물론 이건 나에게 그랬다는 말이다(창비에서 1993년 출간 후 100쇄 이상 찍었으니 나만 읽기 싫었나 봄) 왠지 수능시험의 언어영역 지문을 마주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끝맛에 꽃향기가 진하게 남는 맥주를 큰 잔에 콸콸 따른 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는데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담은 여행기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지역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여행기란 흔치 않다. 모처럼 얕고 넓은 지식이 아니라 깊고 깊은 지식을 얻으며 전문가의 국내 여행을 따라다니니 독서 중에 자꾸만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맥주,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 주말 남도행 티켓을 끊었다.
술을 부르는 문장
그러자 이 조용한 가양주 9단은 느린 어조로, 그러나 단호한 자세로 반드시 어두운 곳이어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하였다. “술은 자기가 변해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것은 술의 숙성원리이자 학문의 숙성원리이고 하며 참선의 원리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