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주변에 (공테이프를 제외하고) 비디오테이프를 하나라도 ‘소장’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초기 흑백 무성영화와 각종 희귀영화들을 여기저기서 구해다 놓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의 장롱 속에서 오래된 에로비디오를 발견했다는 친구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적어도 세편 이상씩은 꼭 갖고 있다.
나도 비디오 중고판매점을 지나칠 때면 들어가서 구경을 하곤 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샅샅이. 그런데, 그러다가 그냥 나온다. 대여점에서 구프로라는 분류하에 단돈 500원이면 볼 수 있는 것들을 희귀품이라는 명목하에 몇 천원, 심하게는 1만원 이상씩 주면서 뽕빼먹을 만큼 보고 또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500원이면 볼 수 있었던 영화에 대해 기어이 6천원의 연체료를 치르고야 마는 나 정도의 게으름이라면 빌려보느니 사보는 게 이득일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비디오는 카세트테이프나 시디와는 달라서, 내 것이 되는 순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영원히 보지 않고 방치해둘 가능성이 너무나 짙어지는 것이다. 친구에게 빌린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보지 않고 있는 비디오가 그 증거다.
단순 희귀품의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우리나라에서 개봉하지 않았거나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한다고 해도 나는 서둘러 녹화버튼을 누르는 대신 처음부터 보지 않은 영화는 아예 안 보는 습관 때문에 그냥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뭐, 라고 생각하며. 영화에 대한 소유욕이 너무나 빈약한 까닭에, (나 같은)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되돌려받지 못할 걱정도 없이 나는 항상 홀가분하다. 그 덕에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무수한 영화들을 아직까지도 기약없는 만남하에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손원평/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