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환하는 비디오 가게 세 군데. 첫 번째는 역이 생기기 1년 전에 이미 ‘xx역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유명한 체인점이다. 공간이 좁고 사실 없는 비디오도 많지만 특유의 전략적 마케팅과 깔끔한 분위기로 가게 안의 사람들끼리 교통사고가 날 정도로 운영이 잘 된다. 가끔씩만 모습을 드러내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일정기간 이상의 무단 연체에 대한 소송을 걸 수 있다”는 등의 협박이 10계명처럼 번호를 매겨 공고되어 있는 카운터와 감시 카메라의 모니터 사이에서 항상 조용히 독서를 즐기신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길 건너 자리잡은 또 한 군데는 크기와 전통으로 승부한다. 이벤트성 쿠폰 따위는 없으나 약간의 인정과 예외가 존재하는 이곳. 2박3일 이상의 구프로에 대한 연체료는 분위기에 따라 상당부분 무효화되며, 게다가 먼지 쌓인 진열대를 뒤지다보면 캐서린 제타 존스의 10대를 목격할 수 있는 영화도 발견되곤 한다.
다시 비스듬히 길을 건너면 한때는 비디오 가게로 번성했으나 이제는 주인아저씨와 그 친구들의 바둑, 장기터가 된 곳이 나타난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비디오 고객보다는 가게 안팎에 자리잡은 5대의 어린이용 오락기구에 탐닉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로 항상 북새통인 곳. 대여료가 좀 비싼 대신 2주 뒤에 갖다줘도 “재밌게 봤어요?”라는 말이 있을 뿐 연체료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예전에는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회수하러 다니셨다) 컴퓨터 대신에 아직도 손글씨로 고객관리를 하신다. 오래된 옛 프로도 많으나 상당부분 아저씨가 그 비디오가 어디 있는지를 찾지 못해서 서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항상 이 삼각구도를 유유히 떠돈다. 다양한 가능성이란 건 언제나 즐겁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