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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냄비처럼…
2002-03-13

심재명/ 명필름 대표 [email protected]

요즘 영화 마케팅에 워낙 공력을 기울여서 그런지 영화를 다루는 매스컴 관련 매체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조금만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봉 전 ‘영화’에 대한 여러 리뷰와 별점 및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웬만큼 입소문이나 평가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영화는 개봉 3주 전부터 공개시사회를 열거나 하는 식이어서 보통 3주나 2주 전부터 영화에 대한 정보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보게 된다.

빅스타가 출연하거나 화제의 이슈거리가 많은 영화는 관련 기사빈도수가 더욱 늘어나서, 개봉 전 ‘인지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다뤄지고, 평가되고, 소개되지만 정작 관람을 위한 정확한 기준을 만들어주거나, 새로운 해석을 내려주는 것들을 찾아내는 건 힘들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별점의 숫자는 그게 그거고, 그 많은 리뷰에서 눈에 번쩍 뜨이는 ‘발견’의 지점을 찾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많던 ‘이야기’들은 영화가 개봉됨과 동시에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다. 정작 영화를 극장에 찾아가 관람하고 나서 남들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찾을라치면 꽤 날짜가 지나간 잡지를, 신문을 찾아야 한다. 웬만큼 흥행성이 높은 영화나 대단한 완성도의 영화 아니면, 대체로 한달 뒤면 흥행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다양한 평가도 ‘게임아웃’돼버린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더 괴로운 건 개봉도 되지 않은 영화를 가지고, 채 관람하지 않은 영화를 가지고 다양한 ‘꺼리’를 만들어 풀어내는 통에 정작 영화에 대한 개인의 이해나 선호여부 없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이런저런 의미를 찾아내야 할 판이다.

한편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극장 안에서 충분히 소통되고 전달되고 난 연후에 이곳저곳에서 뜨거운, 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퍼져나가야 할 터인데 말이다. 매스컴은 너무 빨리, 너무 뜨겁게, 너무 거창하게 달구어지고 너무 쉽게 그 영화를 놓아버린다.

관객도 그렇다. 재개봉관도 없어진 유통·배급 시스템은 이르면 1, 2주일, 길면 1달, 정말 가끔 가다 2달여까지 간판을 붙였다가 또 냉정하게 그 영화에 이별을 고한다. 꽤 시간이 지난 뒤 어느 후미진 골목의 침침한 스크린에서 뒤늦게 만난 영화에서 새로운 재미와 의미 같은 기쁨을 발견하고, 어느 매체의 한구석에 올려진, 그 뒤늦게 찾아진 새로운 해석과 만나는 즐거움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언젠가 <씨네21>에서 ‘미안해 영화야, 늦은 사과를 받아줘’라는 제목하에 짧게나마 다시 한번 몇몇의 영화에 대해 재발견, 재해석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사려 깊은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쉽다. 지금 영화는, 매스컴은, 관객은 양은냄비처럼, 그 속의 물처럼 너무 빨리 뜨거워지고, 너무 빨리 식는다. 그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