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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포스트 누벨바그 기수들의 행보
김보연 2015-04-29

시네마테크 재개관 특별전-비타협: 장 외스타슈 & 모리스 피알라

<엄마와 창녀>

서울극장으로 새롭게 보금자리를 옮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4월24일(금)부터 5월5일(화)까지 “비타협”이라는 부제와 함께 장 외스타슈모리스 피알라의 영화 13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연다. 장 외스타슈와 모리스 피알라는 태어난 시기는 물론(장 외스타슈는 1938년생, 모리스 피알라는 1925년생) 작품의 성격도 서로 다르지만 ‘포스트 누벨바그’란 이름으로 함께 묶이는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다시 말해 이 두 사람은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등 ‘누벨바그’ 감독들과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누벨바그는 어떻게 누벨바그와 구분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설명은 두 감독의 장편 데뷔 시기가 누벨바그 태동기인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보다 늦다는 것이다. 장 외스타슈는 첫 장편인 <엄마와 창녀>를 1973년에 만들었으며 모리스 피알라 역시 1967년에 <벌거벗은 유년 시절>을 발표했다. 이 시기는 이미 프랑스 내부에서도 누벨바그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의심 섞인 진단이 등장할 때였으며, 마침 때맞춰 등장한 두 감독의 개성 넘치는 데뷔작은 (흥행과는 별도로) 관객의 새로운 기대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 68혁명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행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시 사회를 뒤덮은 새로운 변혁의 물결과 함께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68혁명 이후의 후폭풍 역시 고스란히 껴안아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장 외스타슈는 <엄마와 창녀>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려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타인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젊은이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언뜻 보면 단순히 여인의 사랑에 목마른 청년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주인공인 장 피에르 레오가 당시 거리의 풍경에 대해 스치듯 짧게 언급하는 것만으로 이 3시간30분짜리 데뷔작은 68혁명 이후 파리를 감싼 허무하고 위태로운 공기를 담은 작품으로 읽힐 가능성을 새로 얻는다. 그가 이후에 <불쾌한 이야기>(1977), <알릭스의 사진>(1980) 등 이야기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갔음에도 그의 영화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항상 <엄마와 창녀>가 꼽히는 것 역시 포스트 누벨바그 감독인 외스타슈가 가진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 피알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외스타슈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피알라는 주인공이 부모와 헤어지든(<벌거벗은 유년 시절>), 불치병에 걸리든(<벌어진 입>), 서로 사랑을 나누든(<룰루>), 심지어 19세기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든(<반 고흐>) 마치 사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건조하고 냉정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 결과 피알라의 인물들은 주류 사회의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무관한 듯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의 변화상에 벌거벗겨져 내던져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68혁명 이후에도 더 나아지지 않은 연약한 삶의 조건에 대한 피알라의 비판적인 논평으로 읽어내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의 부제인 “비타협”은 장 외스타슈와 모리스 피알라의 서로 다른 영화 세계를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적절한 키워드로 보인다. 이들은 영화 제작 방식은 물론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끈질기게 비타협을 추구한, 어떤 의미에서 누벨바그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한 누벨바그 감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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