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진행로를 바꿀,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마련이다. 윌 스미스에게는 <알리>가 그랬다. 성공한 엔터테이너요, 2천만달러짜리 슈퍼스타인 그는, 그러나 늘 흥행 배우가 아니라 진짜 배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허기에 시달렸다. 그리고 <알리>의 링에 서서 그 목마름을 해소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랩으로 백인들의 이목을 즐겁게 했던(그래서 흑인들의 반감을 샀던) 그는 이제 그들의 영혼마저 사로잡은 것 같다. 흑인 배우 사상 최고의 스타 윌 스미스가 백인의 미국, 나아가 세계를 사로잡은, 그 매력의 비밀을 엿본다. 편집자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개봉하던 1999년 여름을 윌 스미스는 잊지 못한다. 그를 심각한 고민에 빠뜨린 것은 이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치솟은 흥행 성적이었다. 주연 배우인 그가 보기에도 함량 미달인 영화가 개봉 주말 사흘 동안 5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은 안도감이 아니라 상처를 안겼다. “배우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기억이다. 사흘 동안 5천만달러를 벌어준 영화가 실은 아주 형편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너무나 괴롭다.”
윌 스미스는 자신이 흥행 배우 그 이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지만, 감독과 캐스팅의 면면을 믿고 따라나선 <베가 번스의 전설>도 그를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시 <알리>가 찾아왔다. 벌써 5년째 끈질긴 구애를 펼치고 있는 <알리>의 제작진 앞으로 윌 스미스는 “공식적으로는 5번, 비공식적으로는 40번 정도” 거절의 뜻을 표시해 온 터였다. 그동안 많은 감독이 <알리>의 연출자로 물망에 올랐다 사라졌지만, 알리 역으로 윌 스미스 이외의 다른 배우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와 <베가 번스의 전설>의 연이은 실패로 위축된 윌 스미스는 눈앞에 있는 <알리>를 덥썩 잡지 못했다.
백만장자의 허기
윌 스미스는 뭐 하나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4대가 안락히 살 만큼의 재산을 모은 백만장자이고, 편당 2천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다. 톰 행크스,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와 나란히 특급 대우를 받는 흑인 배우는 그가 유일하다. 상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전성기 때의 알리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윌 스미스뿐이었다. 덴젤 워싱턴이나 웨슬리 스나입스는 ‘떠버리’ 알리를 연기하기에는 너무 점잖고, 에디 머피는 알리의 육중한 내면을 그려내기에 너무 가볍고, 사무엘 잭슨이나 로렌스 피쉬번은 너무 늙었다.
그런데도 윌 스미스는 <알리>를 붙잡고 5년을 망설였다. 자신이 블랙 파워의 표상이자 아이콘인 알리를 연기하기엔 ‘아직’ 역부족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실패로 서먹해진 배리 소넨펠드가 떠나고, 마이클 만이 <알리>의 연출자로 최종 낙착되면서, 윌 스미스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엔터테이너나 흥행 배우라는 지금까지의 포지션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던 것. 이 시대 최고의 흑인 전사를 몸과 마음으로 품어냄으로써 자신을 ‘사이비’ 흑인 취급하는 존 싱글턴이나 스파이크 리에게도 인정받고, 영양 결핍인 자신의 필모그래피도 튼실하게 다져놓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이 바라는 내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내가 될 것”이라는 알리의 말은 <알리>에 임하는 윌 스미스의 다짐이기도 했다.
흑인 음악인들의 왕따시킨 슈퍼 래퍼
오스카 시즌이 돌아왔다. 윌 스미스는 <알리>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알리>는 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다줄지도 모른다. 재미난 사실은 윌 스미스를 그 자리에 오를 만큼 영향력 있는 배우로 키운 건 미국의 대중, 특히 백인 관객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먼저 랩과 패션 등 흑인 문화 자체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이즈음의 어떤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윌 스미스는 배우가 아니라 래퍼로 자신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또래들처럼 랩에 심취해 있던 열여섯의 윌 스미스는 한 파티에서 제프 타운스를 만나 ‘디제이 재지 제프 앤 프레쉬 프린스’라는 팀을 이루고, 몇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들 듀오의 랩은 10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그래미에 막 신설된 랩 퍼포먼스상을 수상했다. 윌 스미스의 랩은 처음부터 저항이나 분노를 담은 공격적인 힙합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춤추기 좋은 비트에 맞춰 부드럽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패스트 라이프, 패스트 캐쉬, 패스트 카, 하이 패션’을 노래했다. “음악은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는 단순하고 가벼운 ‘철학’ 때문.
윌 스미스는 기존 래퍼들이 흑인 영어를 고수하는 경향에 대해 맹공을 퍼붓기도 했고, 그 때문에 한동안 흑인 음악인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는 흑인들의 고유한 놀이 문화를 백인 중산층의 입맛에 맞춰 변형하고 또 상업화했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변절적인’ 시도가 힙합이 인종을 초월한 청년문화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힙합 문화의 아이콘. 이는 윌 스미스가 음악에서 연기로 무게 중심을 옮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래퍼로 명성을 떨치던 무렵, 뮤직비디오를 본 퀸시 존스의 추천으로 윌 스미스는 NBC 시트콤 <벨 에어의 프레시 프린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춤과 노래, 패션 등 래퍼 윌 스미스가 보여준 재능에 기댄 작품이었다. 베벌리 힐스의 친척집에 머무르게 된 동부 출신 소년의 좌충우돌을 그린 이 시트콤은 흑인 문화의 미덕과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수용한 새로운 흑인 청년상으로서의 윌 스미스를 선보였다. 영화 <메이드 인 아메리카>에서도 그는 여자친구를 어르고 달래는 데 능한 수다스럽고 익살스러운 대학생으로 출연해 시트콤에서의 이미지를 반복 재생해 보였다. 돈 많고 여자 좋아하는 형사로 출연한 <나쁜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트콤이 6년에 거쳐 인기를 끌면서, 윌 스미스의 ‘상업성’이 검증되자, 이제 각종 블록버스터에서 그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은 악당이나 마약중독자가 아닌, 백인 캐릭터의 들러리가 아닌, 진정한 영웅 캐릭터에 윌 스미스를 데려다 앉혔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용맹스럽고 가정적인 파일럿이었고, <맨 인 블랙>에서는 정부의 비밀요원이었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서 모두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국가권력의 음모에 휘말리는 변호사였고, 심지어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서는 서부의 전설적인 총잡이가 됐다. 유복한 환경과 타고난 재능, 성공한 흑인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도맡아 연기하던 윌 스미스는 보수적인 할리우드에 “흑인이 하면, 무엇이든 새롭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까지 심어줬다.
죽기 살기로 '알리' 되기
윌 스미스의 초기작인 는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고, 비디오로도 보기 힘든 작품이지만, 윌 스미스의 이력에서 여러모로 돋보이는 걸작이다. 백인 부촌을 떠돌며 자신을 시드니 포이티어(<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주연 배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배우)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화려한 언변으로 노부부들의 혼을 빼놓는 매력적인 게이 사기꾼으로 출연한 윌 스미스의 연기는 일품이다. 그의 사기 행각은 뉴욕 부호들의 허영과 위선에 결정타를 먹이고 있는데, 그러한 캐릭터 이미지는 흥미롭게도 선배 연기자인 시드니 포이티어를 연상시킨다. 시드니 포이티어의 정공법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세상에 깨달음을 주는 현자이자 지도자인, 다분히 인종주의적인 동시에 인종 초월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낸 것이다.
‘힌두교의 신’을 모델로 했다는 <베가 번스의 전설>에서 세상사 만물의 진리를 터득한 흑인 캐디로 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윌 스미스는 에디 머피의 익살스러움 다음엔 덴젤 워싱턴의 지성을 벤치마킹했고, 그 다음엔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자 이미지 메이커였던 시드니 포이티어의 카리스마까지 탐냈다.
<알리>를 선택한 건, 그러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알리의 투지와 야심을 힘들여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윌 스미스는 알리와 닮은 점이 많다. “99.3%는 100%가 아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감독 마이클 만보다 더 지독한 완벽주의자. 윌 스미스는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때 따르는 기쁨과 비애”를 담아내기 위해 ‘무하마드 알리 되기’에 나섰다. 1년 가까이 새벽 조깅으로 시작해 월드 챔피언들의 사사, 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꽉 짜여진 트레이닝에 돌입했고, 16kg의 비대한 근육을 붙였으며, 대역 없이 링 위에 서서 진짜로 치고 받았다. “촬영장에 배우는 없었다. 파이터뿐이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희생 못할 건 없다는 식으로 모두 덤벼들었다. 우리가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제작비 초과로 프로젝트가 위기에 봉착하자, 제작비 초과분을 마이클 만과 자신의 급료에서 벌충하자는 타협안을 내놓고 밀어붙였다. 개런티 2천만 달러의 꿈은 날아갔지만, 마이클 만을 위시한 ‘드림팀’과 함께 온전히 알리로 부활하는 것이 그에겐 더 시급했던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레이커스와 결승전을 벌일 때 그와 함께 주전선수로 뛰려면 돈을 내야 하느냐 하는 문제랑 비슷하다. 한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란 얘기다.” ‘가벼운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는 데 드는 수업료는 꽤 비쌌던 셈이다.
어디에서 누구와 싸우든 '이겨라'
대중이 윌 스미스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밝고 온화한 이미지의 배경이 됐을, 건강한 사생활 때문이다. 윌 스미스는 필라델피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일찍 스타덤에 올랐지만, 비교적 반듯하게 살았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천방지축 고무공 같은 아들도 움찔할 만큼 엄격한 사람이었고, 학교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마약과 흑인 속어에 물들지 않게 단속했다. 차를 여섯대씩 굴리고 미친듯이 옷을 사대고 파티에 중독됐던 풋내기 스타 윌 스미스의 정신을 돌려 놓은 것도 그의 가족이었다. 십대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고, 그 자신도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한 바 있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새로 꾸린 가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이 윌 스미스의 스타성에 후광을 보탰다.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트레이와 정겹게 출연했던 의 뮤직비디오는(비록 <오스틴 파워스>에서 마이크 마이어스와 미니미 버전으로 희화화되긴 했지만) 윌 스미스의 자상한 아버지상을 대중적으로 어필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배우인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알리>에서 알리의 첫번째 아내 손지로 출연해 호흡을 맞췄다. 의 좋기로 소문난 윌 스미스의 형제 자매들은 각자 매니지먼트와 자선사업 등을 맡아 곁에서 그의 일을 돕고 있기도 하다.
학창시절의 절반 이상을 백인 학교에서, 그 나머지를 흑인 학교에서 보낸 윌 스미스는 그때 맺은 인간관계와 그로 인한 깨달음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단언한다. “백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의 갭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흑인들은 ‘지금 여기 이 상황’에서, 백인들은 ‘미래의 어떤 가정’에서 웃음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 무렵 그가 발견한 차이.
윌 스미스는 그러나, 자신이 흑인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환경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그가 연달아 출연한 블록버스터가 지나치게 백인 취향이라거나, <베가 번스의 전설>의 캐릭터가 백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흑인 캐릭터였다는 식의 비난들. “흑인들은 흑인 배우들이 배역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타협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걸 봐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백인들이 흑인을 영화에서 소외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맞장구치는 대신 ‘그럼 당신이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라’고 말한다. 먼저 앞장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이거 우즈처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로 스튜디오에 3억달러 이상을 안겨줄 수 있는 흑인 배우는 흔치 않다. 그런 배우가 오스카의 선택을 받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다. 박스오피스를 돌파하고 오스카까지 돌파한 뒤에, 윌 스미스는 어디로 달려갈까. 그는 NBA 선수의 꿈을 접은 대신,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자신감을 가지려고 애써본 적은 없다. 때론 망상도 필요하다.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수월해진다.” 우리는 윌 스미스의 피부색을 자주 잊게 될 것이다. 대신 할리우드라는 정글에서 적자생존한 그의 투지와 야심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흑인 스타가 아니라, 슈퍼 스타다. 어디에서 누구와 싸우든, ‘부마예(이겨라)’라는 외침과 추종자들을 몰고 다닐. 박은영 [email protected] 윌 스미스 필모그래피
<벨 에어의 프레시 프린스>(TV) (The Fresh Prince of Bel-Air)(1990∼6)
<흔들리는 영웅> (Where the Day Takes You)(1992)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1993)
(Six Degrees of Seperation)(1993)
<나쁜녀석들>(Bad Boys)(1995)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1996)
<맨 인 블랙>(Men in Black)(1997)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1998)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1999)
<베가번스의 전설> (The Legend of Bagger Vance)(2000)
<알리>(Ali)(2001)
<맨 인 블랙2>(Men in Black2)(2002)▶ 윌 스미스는 어떻게 백인을 사로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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