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랑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금실 좋은 부부라도 지루한 시간의 두께에 질리기 마련이다. <파리 폴리>는 권태에 빠진 중년 부부가 무뎌진 감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목장을 운영하는 무뚝뚝한 남편 자비에(장 피에르 다루생)는 전원생활의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하다. 하지만 예민한 감수성의 소녀 같은 아내 브리짓(이자벨 위페르)은 무료한 생활에 조금씩 지쳐간다. 아들마저 도시로 떠나버려 답답함을 느끼던 그녀는 우연히 만난 연하남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얼마 뒤 브리짓은 남편을 속인 채 충동적으로 파리 여행을 떠난다.
애정이 끝나면 우정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평생 가슴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브리짓은 3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통해 우리가 일상이라는 변명으로 잊고 살았던 자극을 체험한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일탈은 외도나 감정적인 흔들림과는 조금 다르다. 그녀의 갈증은 특정 인물이나 잘생긴 연하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에 관한 욕망처럼 보인다. 세련된 외모의 지적인 문학청년 스탄, 매너와 유머를 두루 갖춘 치과의사 재스퍼를 내버려두고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오는 예정된 결말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애정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자극적인 사건에 기대지 않고 잔잔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채워나간다. 이자벨 위페르는 소녀처럼 귀엽고 중년 부부의 티격태격 애정행각은 의외로 사랑스럽다. 권태와 자극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애정의 조건을 차분히 곱씹는 화면들이 삽화집마냥 촘촘히 들어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