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절친 할머니 왈,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말이 이제 너무 무섭다.” 60년지기 한분이 세상을 등지고 나서 몹시 힘들어하셨다. 생각해보니 노인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에서 진짜 무시무시한 표현이다. 무심코 쓰던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도 세월호를 겪으면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심정을 과장해 표현하는 말들이었으나 이제는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진짜 땅이 꺼지기도 하니까.
‘원전 터지면 끝장이니 애 학원 보내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자’는 말을 주위에 쉽게 하곤 했는데, 이 역시 금기 표현 목록에 올려야겠다. 말이 씨가 될까봐 겁난다. 폭우로 가동중단 ‘시켰다’던 원전이 실제로는 가동중단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당국의 대처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불량 위조 부실 담합 조작 은폐… 나열하기도 버겁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현장 기술자들이 자리를 지켜준 게 고마울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올해 말부터 아랍에미리트로 상당수 파견될 예정이란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나라에서 정작 시설, 정비, 인력은 태부족이다. 그나마도 ‘초보’들로 채워지고 있다. 3년차 이하 직원 비율이 2010년 15%에서 지금은 30%를 넘는다. 그야말로 무대책이 정책이다. 이 와중에 더 짓는다니.
후쿠시마 원전 등에서 35년 동안 일해온 일본의 원전 기술자 오구라 시로는 자신의 책 <전 원전 기술자가 알리고 싶은 진정한 두려움>에서 원전의 치명성은 “원전이 일으킬 수 있는 사고에 인간이 완전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원전의 복잡함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통제도, 예측도 불가능하다. 이런 괴물을 끌어안고 정신줄 놓지 않고 살아가다니, 진정 우리는 멘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