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에 유현목 감독이 <인생차압>이라는 현대물을 찍는데, 틈만 나면 자기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조르는 거야. 현목이랑 나랑은 동갑이라 무척 친했거든. 다른 사람 영화엔 출연해주면서 자기 영화엔 왜 얼굴을 안 내미느냐는 거지. 그래서 대신 의상을 해주마 했지. 그게 첫 현대물이었어.
현대물 의상은 사극에 비하면 할 일이 거의 없어. 배우들이 배역의 성격에 맞춰 직접 자기 의상을 준비해 와서 찍는 게 다반사였거든. 그 당시엔 얼굴 좀 알려졌다 하는 배우들은 자기만의 의상점이 하나씩 있었어. 지금은 앙드레 김이 연예인들 의상해주는 걸로 유명하지만, 그땐 노라 노(Nora Noh)가 양장점을 차려서 이름을 크게 알렸지. 상고물(삼국시대물)이랑 현대물은 그이가 거의 도맡다시피 했어. 그이가 상고물 의상을 지으면 양장 분위기가 나는 특이한, 지금 말로 하면 개성있는 한복이 연출됐지. 나도 그이 옷 하는 건 마음에 들더라구. 솜씨가 아주 깔끔해. 요즘도 서대문에서 예식장을 하고 있다지. 당시 그이 양장 짓는 솜씨에 반해 단골 삼은 여배우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배우 엄앵란씨는 아예 그 집을 전속 의상실로 정해두고 옷을 해 입었지. 요새야 협찬이란 게 있어서 연예인들 옷을 공짜로 대준다지만, 그땐 배우들이 자기 이미지에 맞는 옷집을 골라 직접 의상을 마련해야 했거든.
종로의 크레타 리(Creta Lee)라고 또 한 사람 있었어. 87년 한해에 연산군 일대기를 다룬 두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는 내가 맡고, 이혁수 감독의 <연산군>은 그이가 맡았어. 아무래도 같은 내용의 영화이다보니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잖아. <연산군>의 의상들은 돈은 엄청 들였어도 시대에 꼭 맞지도, 그렇다고 그림이 되지도 않게 어정쩡했어. 내가 더 잘했다고 말하는 게 아냐. 영화 의상하는 사람은 영화의 성격이 어떤지, 어느 배역에게 옷을 입히는지, 시대적 배경이 어딘지 배우나 감독 못지않게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대본 읽기는 기본이고, 원작이 있다면 원작부터 구해다 읽고, 영화 속 시대를 말해주는 자료가 있다면 구비해놓는 게 의상이 해야 할 일이야.
배우들의 신체치수를 외운다니까 놀라는 사람들이 있어. 그게 뭐가 놀랄 일이야. 치수뿐만 아니라 특징까지 다 알고 있어야 해. 저 배우가 목이 긴지, 붙었는지, 어깨를 벌리고 다니는지, 구부리고 다니는지, 다리가 휘었는지, 같이 사는 가족마냥 알아야 해. 그래야 옷을 입는 배우가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자기 옷이라 느끼게 되지. 현장에서 옷을 풀어놓으면 배우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어. 배우의 몸을 아는 사람이면 어디가 안 맞아서 불편한지 단박에 알 수 있지.
한데 요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도통 몰라. 협찬이다 뭐다 잔뜩 얻어와서 되는 대로 입히는 코디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손으로 지은 옷도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배우의 몸을 몰라서 그래. 난 영화가 시작되면 대개 주연의 집으로 가지. 만나서 요구사항을 들어. 내 몸이 이러이러하니 요 부분은 신경 써달라든지, 어디를 가려 달라든지 드러내 달라든지, 무늬가 있었으면 혹은 없었으면 좋겠다든지, 천은 보들한 걸로 혹은 뻣뻣한 걸로 해달라든지 쭉 듣고, 이제 감독의 요구사항을 듣는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의 요구사항을 종합해서 한벌의 영화의상을 짓는 거지. 간혹 무리를 해서 의상을 해가도 마음에 안 든다고 감독이나 배우들이 퇴짜를 놓을 때가 있어. 엄앵란, 김지미, 문정숙, 조미령, 도금봉 그때 내 손을 거쳐갔던 여배우들이 지금 와서 이런 얘길 해. “그때 어떻게 자기들 비위를 다 맞췄는지 대단하다”고.
그냥 배우 하나 붙잡아서 삯바느질이나 해주며 편하게 돈 벌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고, 그때 그 흔한 한복집 하나 냈어도 지금 떼돈을 벌었겠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 그런 생각할 틈이 있었나. 현장 뛰어다니는 데 지쳐서 가게 내는 건 엄두도 못 냈지. 남의 삯바느질이야 돈은 벌겠지만, 내가 만든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배우들 바라보는 뿌듯함에 비할라고. 얼마 전 임권택 감독이 만든 <춘향뎐>이 칸영화제에 입성하면서 여배우가 진홍빛 한복 치마를 차려입고 주단을 밟아서 화제가 됐잖아. 60년대 국내, 국제영화제에 참여하는 여배우들은 모두가 한복차림이었어. 지금처럼 드레스니 양장이니 하는 옷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어. 조미령이나 도금봉이 시상식에 참여한다고 나한테 와서 옷을 맞춰 입고 가곤 했지. 최은희도 어디 갈 땐 꼭 나를 찾아와.
하지만 꼭 좋은 시절만 있던 건 아니었어. 3년마다 영화판에 부도 바람이 몰아닥쳤고, 흥행사 하나가 몰락하면서 대여섯개의 제작사들을 연쇄로 끌고 들어가는 위기가 끊이지 않았어. 그 통에 돈도 못 받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이사를 다닌 게 셀 수도 없었지. 그 와중에도 모아놓은 의상만큼은 목숨 걸고 챙겼어. 시대를 증명할 의상들은 그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
구술 이해윤/ 1925년생·<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