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시장에 전자제품 바람이 불고 있다. 얼굴에 갖다대기만 하면 강력한 진동으로 세안을 해주는 진동 세안기를 시작으로 진동 마사지기, 진동 클렌저, 진동 파운데이션, 진동 마스카라 등이 속속 출시됐다. 이중에서 진동 파운데이션은 TV홈쇼핑의 대대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진동 파운데이션이 큰 호응을 얻는 데에는 화장 시간을 단축해주고 피부를 매끄럽고 화사하게 표현해준다는 주장 때문이다. 최근 대중 사이에선 도자기피부, 대리석피부에 대한 열망이 극에 달하면서 무결점의 완벽한 피부를 만들어 준다는 진동 파운데이션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왜 유독 진동 파운데이션이 한국에서만 인기를 끄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동 파운데이션은 2009년 랑콤이 미국에서 파우더 타입으로 가장 먼저 출시했다. 2008년 진동 마스카라의 대대적인 성공 뒤 야심차게 내놓은 신상품이었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편리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손으로 톡톡 두들겨서 바르는 것만으로도 충분 한데 굳이 진동기의 힘을 빌려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간단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수십달러의 돈을 써야 한다니, 미국 여성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2년여가 지나 진동 파운데이션이 한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소비자들은 어떤 의심이나 반론 없이 이 제품을 받아들였다. 왜일까? 한국 여성들이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이는 데 훨씬 열린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쉽게 속고 쉽게 설득당하는 화장품의 맹목적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진동 파운데이션에 대해 우리는 소비자로서 합리적인 의문을 품어야 한다. 첫째는 과연 진동기로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것이 손으로 바르는 것보다 피부를 더 화사하고 곱게 표현해줄까 하는 점이다. 화장품 회사들은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 그저 “파운데이션은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잘 스며든다”는 기존의 속설에 기댈 뿐이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일까? 과연 3만~9만원의 돈을 투자해야 할 정도로 대단할까? 완벽한 메이크업을 원할 때, 우리는 진동기구를 구입하기 이전에 자신의 피부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구입해야 한다. 진동기구가 아무리 분당 1만회 이상의 진동으로 내 피부를 열심히 두들겨준다고 해도, 파운데이션이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파운데이션은 피부 표면에서 부드럽게 펴져야 하고 촉촉하게 스며들어 모공이나 주름이 돋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밀착되어야 한다. 색상도 목과 경계선이 생기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피부톤이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들뜨거나 번들거리는 현상도 없어야 한다. 지성피부의 기름기를 잡아주어야 하고 건성피부의 건조함을 보완해주어야 한다.이처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파운데이션이 진동 파운데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진동기를 선택하느냐에 골몰한 나머지 파운데이션의 선택에는 소홀하다.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진동 파운데이션은 진동기와 파운데이션을 묶어서 세트로 판매하기 때문에 진동기를 위주로 선택하면 자신의 피부에 맞지 않는 엉뚱한 파운데이션을 쓰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아무리 진동기로 두들겨준다 해도 파운데이션이 맞지 않으면 제품에 불만을 갖게 될 것이다. 반대로 다행히 파운데이션이 잘 맞다면 진동기로 두들기건 손으로 두들기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결국 이 제품의 핵심은 파운데이션이지 몇 천번의 진동을 자랑하는 기구가 아닌 것이다. 파운데이션이 잘 맞다면 진동기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1~2분 정도 진동기를 얼굴 위에서 쭉 미끄러뜨리는 것만으로도 화장이 고르게 흡수될 것이다. 진동 파운데이션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파운데이션을 묻힐 필요가 없고, 화장이 빨리 끝나서 좋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손으로 하던 것을 기계가 하기 때문에 훨씬 빠르고 간편할 수밖에 없다. 커버력이 유난히 좋고 화장이 잘 먹는다는 평 역시 당연하다. 그 이유는 이 기계가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의 파운데이션을 피부에 골고루 흡수시키기 때문이다. 진동 파운데이션을 쓰면 예전보다 파운데이션 소비가 빨라지고 화장을 지울 때 더 많은 양의 티슈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운데이션은 가능한 적은 양을 발라야 자연스럽다. 너무 많은 양의 파운데이션은 무거워 보이며 주름과 모공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뭉치거나 들뜨기도 쉽다. 그래서 파운데이션은 손가락으로 바르는 것보다 스펀지나 브러시로 펴바르는 것이 좋다. 스펀지나 브러시가 적당량의 파운데이션을 골고루 펴 발라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르면 커버력이 약해서 잡티가 그 대로 드러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커버력을 높이려면 덧바르거나 처음부터 파운데이션의 양을 많이 발라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화장이 뭉치고 무거워진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밀고 두드리는 것이다. 밀고 두드려서 두터운 화장을 고르게 펴주고 표피에 자연스럽게 흡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파운데이션의 양을 좀더 많이 하여 손으로 밀고 두들겨서 바른다면 얼마든지 진동기로 바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시간은 더 걸린다. 하지만 몇 십분의 큰 차이가 아니라 단 몇분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파운데이션을 피부에 밀착시키기 위해 분당 수천번의 진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손으로 열심히 두들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진동 횟수가 많을수록 화장이 더 곱게 먹는다는 화장품 회사들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진동 파운데이션을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 테스트 해보길 바란다. 얼굴을 반쪽으로 나누어 한쪽은 스펀지나 붓을 사용하여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른 한쪽은 진동기를 사용하여 바른다. 양쪽 모두 파운데이션의 양을 똑같이 하자. 그리고 스펀지나 붓을 사용한 쪽은 두들겨서 마무리하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양쪽의 결과를 비교해보자. 과연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 차이는 거의 없거나, 혹은 전혀 없을 것이다. 양쪽 다 휴지를 대도 전혀 묻어나오지 않을 것이다.
진동 파운데이션은 다소 번거로운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신해준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바쁜 아침에 빠르게 만족스러운 화장 효과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를 위해서 수만원의 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용해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마치 진동 파운데이션 자체의 효과인 것처럼, 손으로 화장을 하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인 것처럼 오해는 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진동기가 아니라 내 피부에 맞는 파운데이션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을 잘 받는 건강하고 고운 피부결이다. 피부에 각질이 많고 거칠고 모공이 크다면 아무리 진동기로 두들긴다 해도 결코 화장이 잘 먹을 수 없다. 화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피부 건강이다. 화장이 잘 먹지 않아 고민인 사람은 진동 파운데이션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것이다. 하지만 사용해보면 역시 손으로 발랐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이 잘 먹지 않아 실망하게 될 것이다. 괜한 돈 낭비하지 말고 먼저 피부 건강부터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동 파운데이션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으로 둔갑한 화장품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동 마스카라는 기대만큼 아찔한 속눈썹을 만들어주지 않고, 화장을 더 깨끗하게 지워준다는 진동 클렌징기 역시 손으로 지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모이스처라이저의 영양 성분을 피부 속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어준다는 진동 마사지기 혹은 진동 마스크는 우리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진동이 모이스처라이저의 영양 성분을 피부 깊숙이 밀어넣어준다면 파운데이션의 색소도 피부 깊숙이 밀어넣지않을까? 클렌저의 세정 성분을 모공까지 침투시켜 깨끗이 지워준다면 클렌징 크림에 녹아나온 파운데이션과 노폐물까지 피부 깊숙이 밀어넣지 않을까? 똑같은 진동 기술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한쪽은 깨끗이 지워준다는 주장을 하고 다른 한쪽은 깊숙이 침투시킨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진동에 대한 화장품 회사들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동 제품은 포화상태에 이른 화장품 시장에서 매출을 올리기 위한 화장품 회사들의 술책일 뿐이다. 아마도 이들은 앞으로 세안부터 화장까지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해주는 것이 마치 피부미용의 혁신인 것처럼 온 국민을 세뇌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제품을 사용해야만 도자기처럼 완벽한 피부가 가능하다고 우리를 현혹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이 제품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그런 기적 같은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고 검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이라고 판단되면 이러한 제품들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다.
* 이 글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책은 피부에 관해 여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42가지를 선별해,피부과 전문의 정혜신과 화장품 비평가 최지현이 속 시원히 그 정답을 알려줍니다(위즈덤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