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충격으로 고소공포증에 걸리기도
<바이오 맨>(1988)을 시작으로 독립한 뒤 처음으로 충무로에 발을 디뎠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를 알아주는 건 방송국의 코미디 PD들이 더 많았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요구하는 것이 많은 탓에, ‘정가이버’라는 별명을 들으며 숲속에서 솔잎을 태워 자연산 스모크도 만들어주고, 장난감 총을 개조해서 불꽃나는 총기로 바꿔주기도 했다. 국제행사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거액을 받기도 했다. 제작되는 어린이용 영화의 90%를 맡아하며, 편당 3∼4백만원을 받던 시절이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윤택한 편에 속했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불가능한 건 없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무렵 어린이 영화를 찍다가 사고를 친다. “절벽에 두 배우를 매달아놓고, 물러섰는데 갑자기 뚝 떨어지더라. 5미터 정도로 그리 높은 절벽은 아니었는데, 그 아래가 온갖 암석투성이라 그거 보면서 조서 쓰는 일만 남았구나, 이제 특효인생도 다 갔구나 싶었다.” 떨어진 이후에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할 사람이 그였지만, 정작 그는 그때 한발자국도 떼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한동안 그조차 고소공포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의 본격적인 충무로 컴백은 <구미호>(1994)가 신호탄이었다. 96년에는 <본투킬> <나에게 오라> <깡패수업> <진짜 사나이> 등 1년에 5편 정도씩 꾸준히 일이 들어올 정도가 됐다. 하지만 정작 돌아온 현장에서 그는 여러번 한계를 느꼈다. “<구미호> 때만 하더라도 와이어 액션에 대해 아는 스탭이 전무했다. 35mm 영화에서 그런 걸 한다고 하면 다들 무시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아무래도 그의 뇌리에 오래 남는 작품은 <구미호>에 이어 박헌수 감독과 함께 작업한 <진짜 사나이>였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빌린 진짜 총을 들고 촬영에 들어간 것이 그를 흥분케 했다.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감독한테 한번만 더 찍자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화약만 하더라도 이전 작품에서 썼던 총량보다 더 많이 썼다”
그가 오래 숨겨둔 실력을 내보이기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어 그는 <퇴마록> <아름다운 시절> <쉬리> <유령> 등에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 행보를 보여준다. 기존에 쓰는 장비나 재료만으로 머릿속에 그려놓은 느낌이 나오지 않으면, 촬영 도중 밤을 새워서라도 새로 만들었다. 강화유리를 깨는 장면 등도 망치로 깨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쇠구슬을 넣어 공기총으로 쐈고, 철심호스를 이용한 가스불이 양에 안 차면 무리를 해서라도 화염방사기를 직접 만들었다. 아트서비스의 오상만 대표는 그런 그를 두고 “그와 작업하다 보면 실사가 CG를 능가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모 핸드폰 광고를 찍은 적이 있는데, 정 기사의 손맛을 본 제작진들이 혀를 내두르며, CG로 실사촬영을 보충하려고 한 계획을 폐기했었다”고 전한다.
도심에서 화약 맘껏 써 볼 영화 기다린다
그런 그가 가장 뿌듯해 하는 영화는 <리베라 메>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의 영화 <싸이렌>이 할리우드 스탭들을 기용한 탓에 “시사회 전까지 긴장 많이 했다”는 그는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특수효과만큼은 앞섰다”고 자부한다. “할리우드와 장비가 월등히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사실 불을 쓰는 방법은 가스 아니면 오일, 두가지밖에 없다. 어떤 장비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불을 변형하느냐가 문제다. 그것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싸이렌>은 뭘 새롭게 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게 전혀 없어 보였다”
따지고 보면 총격전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사실 <히트>의 도심 총격전 장면이 실감난다고 하지만, 그건 연출이 훌륭한거지 특수효과가 훌륭한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도 그 장면하고 똑같이 만들어 달라는 감독도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갑갑하다.” 그 장면에서 쓰이는 피탄이나 화약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자동차의 총탄 자국도 뻥 뚫려있어 비사실적이다. 그런데도 그 장면이 힘있어 보인다면, 그는 “그건 캐릭터가 힘 있고, 앵글이 다양하며, 편집이 훌륭해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메이킹 필름만 달랑 들고 와서 “이렇게 해달라”하는 이들도 그는 별로 반갑지가 않다. 언젠가는 메이킹 필름에서 봤다며, 수입 스모크를 구해달라는 곳이 있어, 홧김에 청계천 가서 산 국산 스모크를 상표만 뜯어 가져다 준 적도 있다.
그렇다고 그가 할리우드 시스템의 장점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젠 특수효과 스튜디오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수효과 스튜디오라고 해서 별게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설계할 때 기둥 몇개 더 세우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그런데 우린 그것조차도 없다” 그는 요즘 촬영장에서 제작자들을 우연히 만나 술을 한잔 하게 되면, 첫마디서부터 이 문제를 꺼내든다. “에어를 이용하여 차를 전복시키거나, 강하게 불을 내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현장이 아니면 실험할 만한 공간 하나 없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답답해서기도 할 것이다.
그는 프로덕션 기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특효팀들에게 연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이건 사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 팀 역시 더 잘할 수 있는데도, 상황 때문에 기존의 것을 답습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임기응변으로 메울 수는 없지 않나” 내년부터 그는 팀장들 뒤로 한발 물러서서 실험에 주력하고 싶다 했지만, “근사한 도심에서 화약 한번 맘껏 써보는 전쟁영화가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것”이라고 본심을 털어놨다.
글 이영진 [email protected]·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충무로 특수효과의 1인자 정도안 스토리 (1)
▶ 충무로 특수효과의 1인자 정도안 스토리 (2)
▶ 정도안을 당황케 만들었던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