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부메랑 인터뷰’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을 냈다. 박찬욱, 최동훈, 이명세 감독과의 대화를 엮은 것으로 5년 전의 첫 번째 권에 비하면, 다루는 감독 수는 절반으로 준 대신 감독당 인터뷰가 무려 1천매에 달할 정도로 보다 길고 깊어졌다. 물론 영화 속 대사들에서 끌어낸 질문을 통해 감독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형식은 그대로다. 그를 통해 그는 ‘말과 말로 이뤄진 감독론’을 꿈꾼다. 아마도 이 고행의 인터뷰집은 인기 팟캐스트와 TV방송 진행자, 그리고 한개의 몸으로 가능할까 싶은 각종 감독과의 대화(GV)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스타 평론가’를 향한 세간의 시선에 대한 내밀한 자기고백일 것이다. 더불어 “긴 시간을 내어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준 세분 감독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추천작으로 무려 7시간이 넘는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선택했고 1, 2, 3회 전석 매진이었다. (웃음)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라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겨울이라 옷도 두껍고 자리도 좁아서, 내 옆옆에 앉은 한 여자관객은 다리를 끌어올린 채 웅크리고 보더라. 다들 그런 불편함을 견디며 거의 밤 10시까지 함께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이런 집단적 영화 체험의 경이로움, 그리고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웃음)
-이번 인터뷰집은 분량이 압도적이다. =내가 촌철살인의 능력은 없지만,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재주는 좀 있다. (웃음) 모차르트를 천재라 부르면서, 몇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얼마나 빨리 작업했고, 그런 얘기만 하지만 그는 결과물의 양으로도 천재였다. 감히 그와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웃음) 하물며 타고난 천재인 그도 그러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내 작업이 유의미하게 남으려면 절대적으로 양도 중요하다. 전에는 워커홀릭이라는 걸 부정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인터뷰를 끝냈던 박찬욱과 최동훈은 그사이 각각 <스토커>와 <도둑들>을 더 만들어 괴로웠을 것 같다. (웃음) =박찬욱 감독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까지 해서 10시간 정도 맨 처음 긴 인터뷰를 가졌는데, 이후 <박쥐>(2009)가 나온 다음 8시간 정도 더 했고, <스토커>(2012)로도 또 8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래전 만든 영화들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친절한 금자씨>(2005)를 더 조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뭐가 부족하냐고 묻는다면, 히딩크의 말을 빌려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웃음)
-서문에서 밝힌 ‘길고 긴 대화를 통해 구성한 감독론’은 어떤 의미인가. =간혹 왜 질문이 감독의 대답보다 더 긴 것인지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다. 감독이 ‘그런가?’ 혹은 ‘그건 아닌데’라고 답한다고 해서 잘못된 질문이 아니다. 영화라고 하는, 완벽히 통제된 상태에서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예술에서 ‘내 의도는 이러하다’는 감독의 대답이 온전한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감독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 충실히 옮겨내는 전달자에 머무른다면, 평론은 그저 숨은그림찾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제작일지나 코멘터리로 충분할 텐데 평론가의 ‘해석’이 왜 필요할까.
-프리랜서로 나서며 ‘5년 뒤가 궁금하다’고 했다. 어느덧 8년째다. =8년 전 충동적으로 일간지 기자를 그만둘 때는 ‘이대로 부서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포털 네이버와 계약하며 내 맘대로 ‘길어야 5년’이겠거니 생각했다가 사실 그보다 짧게 3년8개월 만에 계약 해지에 이를 때는, 물론 센 척했지만(웃음) 큰 충격에 빠졌다. ‘이제 어떻게 살지?’ 고민하던 중에 여러 방송들을 시작하며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영화평론가가 웬 책 방송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팟캐스트 <빨간책방>까지 하고 있다.
-이른바 ‘스타 평론가’라는 시선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유명 평론가, 뭐 그런 얘기할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다. 전혀 꿈꾸지 않는 것이고, 굳이 바란다면 덜 유명하고 더 버는? (웃음) 개인적으로는 분열적인 측면도 있고 신경쇠약 직전의 상황에 이르는 말 못할 고통의 순간도 여러 번 겪었다. 그저 살면서 행로가 이리저리 휙휙 바뀔 때마다 브레이크 걸지 않고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돌이켜보면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그렇지만, 뭐든 준비한 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명발달사로 보자면, 아직 철기시대인데 황금인생을 바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저 쇳덩이 인생이라도 족하다. 이거 너무 거창한 얘기인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