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도였던 잭 라이언(크리스 파인)은 9.11 사건 이후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지만 작전 도중 큰 부상을 당해 군인으로서의 경력이 끝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재활 훈련을 받던 잭에게 윌리엄(케빈 코스트너)이 찾아와 비밀 임무를 제안한다. 경제학 전공을 살려 CIA에서 함께 일하자는 것이다. 조국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던 잭은 이를 받아들이고, 십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테러 단체의 자금원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는다. 결국 러시아의 한 기업이 비밀리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달러를 사들인다는 사실과 그 뒤에 숨은 테러 계획을 눈치챈 잭은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로 향한다. 그는 과연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할 수 있을까.

<토르: 천둥의 신>으로 잘 알려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톰 클랜시가 창조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든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오랜만에 만나는 냉전을 배경으로 한 첩보스릴러영화다. 케네스 브래너가 <토르: 천둥의 신> 이전에 주로 셰익스피어 등 고전 원작을 영화화하며 경력을 쌓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가 1980년대 스파이물의 대표 캐릭터를 가져와 러시아와 미국의 대결을 그린 첩보영화를 찍은 것은 흥미로운 선택으로 보인다. 또한 끝나지 않은 냉전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과거 스파이영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특히 비밀을 캐내기 위해 최첨단 장비가 아니라 고전적인 미인계를 사용하는 레스토랑 신은 작전의 원래 목적을 잊게 할 정도의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즉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잭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기보다는 80년대 스파이 장르의 고유한 분위기를 불러오는 데 방점을 찍는 영화이다.

현대 첩보전을 그린 영화에서 옛 정서를 길어올리는 기획은 흥미롭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단점은 그 만듦새에서 드러난다. 특히 분위기를 뒷받침할 촘촘한 이야기의 부재는 극의 몰입에 지장을 줄 정도이다. 잭이 어떻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러시아의 계획을 눈치챌 수 있는지, 미국을 침몰시키겠다는 적의 보안 체계가 왜 이렇게 허술한지에 대해 영화는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신 경제용어를 섞은 빠른 대사와 비장한 음악으로 그 구멍을 덮으려 하며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임무를 도와야 할 잭의 연인 캐시(키라 나이틀리)는 중요한 순간에 애정 확인을 빙자한 민폐를 끼치며 실소까지 나오게 만든다.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는 러시아와 미국의 정면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설정과 정통 스파이물의 소재들을 개연성 있게 그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