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감독은 두 가지 길로 다가왔다. 하나는 <안개기둥>(1986)이라는 영화로 여성의 실존적 고뇌를 파고든 반가운 존재로 다가온 길이었다. 그의 <안개기둥>은 한국 영화세상에서 남성도 타자로서 여성을 잘 그려낼 수 있다는 상서로운 징조였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영화 <삼공일 삼공이(301, 302)>(1995) 가편집본을 같이 보자는 권유로 시작된 감독-비평가 소통의 산책길이었다.
감독과 평론가의 교감 1994년이었던가? 1995년이었던가? <삼공일 삼공이> 가편집본을 함께 보면서 박철수 감독은 이런 작업을 꼭 하고 싶었다며 이국적 경험을 토로했다.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에 지쳐 이 땅을 떠나 뉴욕을 떠돌며 만났던 인디 감독들과 사귈 때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편집본을 비평가들과 같이 보며 토론하는 문화가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영감을 주어서, 한국에 돌아가 꼭 그렇게 하겠노라는 다짐을 실천하게 돼 기쁘다는 소회는 내게도 전염되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301호와 302호 두 여성의 대립되는 캐릭터 만들기, 이미지 서사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며 감독님과 엇나가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럼 제가 감독님의 의지와 묘사에 대해 말하면 그걸 반영하실 건가요?” 궁금해서 여쭤보니 당연히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토론의 열기를 불어넣었다. <학생부군신위>(1996) 때도 이런 방식을 실천하면서 연출과 비평이 소통하며 만나는 길은 신선한 기쁨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과거 <안개기둥>에서 발아한 박철수 감독 영화세상의 자기혁신이 본격화된다. 90년대 위기 속에서 변화무쌍해진 한국영화판 다시 짜기에서 그는 ‘박철수 필름’을 세운다. ‘실험과 창의’라는 명제 하에 몸값 높은 스타와 장르 시스템을 벗어난 그는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 서너 편을 동시에 구상할 정도로 피어난다.
“늘 오늘을 파괴하여 내일을 여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그의 전언은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증명된다. 결혼과 엇물려 사랑으로 미화되는 로맨스 신화, 기족이라는 강고한 틀, 법과 제도라는 위선적 시스템 들여다보기 등, 그는 금기와 고질적인 집단 관습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낸다. 그런 모험적 탈주 속에서 여성이라는 그늘진 젠더, 제도적 위선에 위반되는 강렬한 에로스 에너지가 두 개의 기둥으로 작동한다. 기존의 서사학을 벗어던지고 이미지 미장센으로 쟁점을 파고든다. 관객 흥행성을 볼모로 잡아 스타와 장르에 기댄 영화로부터 탈주하면서 그의 강고한 스타일은 신명나게 풀려나간다.
<안개기둥>에서 가부장적 가족, 그 안에서 전업주부의 삶과 자기 길 가기의 딜레마로 고뇌하던 여성은 이제 음식하기와 먹기,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고통을 딛고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여성 버디영화 <삼공일 삼공이>가 그렇다. 요리하는 여성과 거식증 여성은 모두 아픈 과거의 관계를 음식으로 푼다. 카니발리즘까지 불사할 정도로. 대조적인 두 여성은 남성과 성 제도라는 가부장적 욕망구조에 갇힌 현대 여성의 실존적 고뇌를 소통으로 풀어낸다. <봉자>(2000)에서도 김밥 싸며 살다가 쫓겨난 중년 여성(서갑숙)이 10대 여성(심이영)과 만나는 여성 버디 관계 축이 영화에 정점을 찍는다.
관계의 드라마에서 가족은 흥미진진한 보고이다. 우리 현실에서 가족이란 개념, 가족이란 틀, 가족이란 영역은 인생의 보금자리이자, 사회가 못하는 복지의 터전으로 미화되지만 그럴수록 세대차로 이루어진 가족 속 개인의 억압과 고통은 심화된다. <가족시네마>(1998)는 유미리 작가의 재일동포 가족사를 생생한 메타영화(영화로 영화찍기)로 풀어낸다. 20년 만에 모인 가족들, 에로 배우였던 동생, 자폐증 동생, 폭력적인 아버지 등, 가족의 화합을 위해 만났지만 슬프고 아픈 과거와 현재 과제가 산적해있다. 거리를 두고 보면 비극도 코믹해지는 채플린의 경지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국가족의 고통스러움을 일본에서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코미디이다.
현실과 영화는 하나로 돌아가는 박철수식 탈주는 편견을 벗어나는 세상을 예언하듯이 들이닥친다. 실화에 바탕을 둔 <녹색의자>(2003)는 나이든 여성과 어린 남성의 교제가 불법적 원조교제인가? 사랑인가? 질문을 던진다. 여배우 몸 훔쳐보기와 결탁하는 통상적인 베드신의 끈끈함을 벗어난 수많은 베드신들은 몸의 소통을 존재의 내밀한 소통으로 재현해낸다. 그건 이미 전작들에서 쌓아온 탁월한 박철수식 성차감수성이 여성-남성 몸의 수사학으로 작동한 결과이다.
남녀관계 탐색, 박철수식 탈주 영화와 현실로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돌려 풀어내는 것은 그가 꿈꿔온 혁신적인 방식이다. 고다르적인 현실 성찰의 도구로서 영화만들기-놀이는 시간을 넘어 예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나온 가족영화들이나 여성의 몸에 관한 탐구, 양념이건 본질이건 늘 등장하는 남녀관계 탐색은 박철수식 탈주가 예견한 것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피엔딩으로 달려가는 일반적 속성은 ‘행복-가족-사랑’이란 관습적 지평을 이미 넘어선 박철수 감독의 탈주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불시에 인생길을 떠난 박철수 감독의 영화세상을 다시 돌아보며, 사적인 정겨운 기억과 더불어 그에 대한 경배로 쓴 글입니다.